삼별초가 제주에 상륙한 이후로 근세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충돌이 심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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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가 제주에 상륙한 이후로 근세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충돌이 심했던 곳
  • 제주관광신문
  • 승인 2019.06.1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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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춘 여기 어디우꽈? 10 한림 명월진성

명월진성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9호로 제주시 한림읍 동명4길(동명리)에 위치한 진성이다.  왜구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축조된 역사유적으로, 세종 21년(1439) 제주도 안무사 한승순의 건의에 따라 차귀진성과 수산진성이 가장 먼저 형성되었다. 16세기에는 조천, 별방, 서귀, 명월, 애월 진성 그리고 17세기에는 동해진성이 모슬진성으로 옮겨 짓는 것과 동시에 화북진성이 축조되어 9진성이 완성되었다. -편집자 주-

제주시 한림읍 명월진성 전경.

숲을 이룰 만큼 많은 선비들을 배출한 한림. 태평양의 넓은 바다와 황금어장인 비양도, 그리고 한라산이 한 눈에 보이는 물 좋고 경치 좋은 마을은 사방둘레가 완만하고 비옥한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풍요하고 평화스럽게 보이지만, 여기부터가 제주 변방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서기 1002년 한림에서 북서쪽 5km해상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비양도가 형성되면서 한림읍 일대가 침수되어 모두 바다 속으로 잠기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한림 지역의 해안선은 대체로 단조롭고 주로 형무암초와 단애를 이루고 있어서 한림 항을 제외 하고는 천연의 항구가 없다. 한림과 옹포 해안지역은 평평한 지형이면서 용천수가 풍부하여 농사가 잘 되고, 한림 앞 바다에 떠 있는 비양도 주위에는 어족자원이 풍부하여 황금어장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해적인 왜구가 늘 들끓었다. 해적들은 한림에 상륙하기 이전에 먼저 비양도에 주둔하였다가 전열을 갖추고 뭍으로 올라왔다.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다 보니 한림에는 견고한 명월진성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역사의 시작은 고려 원종 11년인 1270년 옹포리로 상륙한 삼별초의 별장 이문경이는 탐라를 점령하면서부터이다. 삼별초에 뒤를 이어 그들을 소탕하기 위해 여몽연합군이 대규모로 병력을 파병하고, 원나라 목마 관리자 목호가 반란을 일으키자 최영 장군이 이곳으로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상륙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비양도와 한림 바다중간에서 대규모 미일 포격전이 벌어져 많은 일본 군함을 수장시켰다.
삼별초가 제주에 상륙한 이후로 근세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충돌이 심했던 곳이다.
제주는 바닷길이 중요한 요충지였다. 왜구들의 호시탐탐 노략질과 침범에 방어 목적으로 조선시대 때 제주에는 섬을 둘러 곳곳에 군사를 주둔시키던 9개의 진성을 쌓았다. 그 중 명월진성이 서부지역에서는 가장 큰 성이었다.

명월진성의 시작은 고려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별초가 본격적으로 옹포로 들어와 명월진성 일대 에 진을 치면서부터이다. 한림 앞바다 비양도는 적군이나 해적이 접근하여 자주 정박하면서 한림으로 침투하여 민가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섬 전체를 위협하는 위급한 상황까지 자주 발생하였다. 이때 1510년 조선 중종 때 제주 목사 장림이 명월포에 목성을 쌓았다가 다시 1592년(조선 선조 25년) 이경록 제주목사는 더 견고한 목성을 석축으로 고쳐쌓았다. 1764년( 조선 영조 40) 이수봉 어사가 아뢰어 조방장을 만호로 승격시키고 제주 사람으로 삼망하여 임명도록 하였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이 말해주듯 명월진성은 제주에서 중요한 군사적 방어진지였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명월진성은 근세에 들어서는 신축교안 때 이재수가 항쟁의 장두로 나서게 된 것도 바로 이곳 명월진성 기습사건의 계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몽골은 제주가 남송과 일본을 잇는 바닷길의 중간 기착지로서 중요한 요충지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몽골은 일본 정벌의 전초기지로 이용하려다가 삼별초가 제주에 상륙하면서 일본은 원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받게 될 정도로 제주는 반도와 섬, 대륙에서의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임을 알 수가 있다.
근·현대로 들어서면서 진성이 필요성이 없어지자 성벽은 역사의 뒤안길로 허물어져 한림중학교 위쪽에 있는 남쪽 성벽 일부만이 흔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성벽은 부분적으로 남아 있지만, 대부분이 성벽은 한림항 축항 공사 때 축조공사 자재로 돌을 옮겨가면서 허물어졌다. 지금은 남문 일부가 복원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비록 옛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많은 역사적인 사건 속에 잠들어 있는 명월진성의 모습에서 제주는 누구도 영원히 탐할 수 없는 열강의 탐나는 땅이었고, 잠시 잠깐 사용했던 진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명월진성 성벽에 올라서서 비양도를 바라보니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으로 다가오지만,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지켜야 하는가를 명월진성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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