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 얼굴에 해학을 넣어…가장 제주다운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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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람 얼굴에 해학을 넣어…가장 제주다운 느낌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06.21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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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천동 세미마을 석상

회천동 세미마을 석상은 화천사 뒤뜰에 모셔 있어 화천사 오석불로 불리지만, 사실은 세미마을 다섯 석인상으로 해석해야 옳다고 한다. 얼굴 모습과 표정이 제각기 다르면서 미소를 짓게 하는 유머가 들어 있어 민중의 표정이며 서민 상을 조각한 것처럼 친근하다.

제주문화를 이해하려면 제주무속문화를 알아야

제주시 회천동 세미마을에 있는 다섯 석인상 모습.

제주시 회천동에는 현무암으로 자연미가 넘치는 회천동 석상이 있다. 팽나무 대여섯 그루 아래 모셔진 이 다섯 석상을 보면 제주 조상들의 얼굴에 해학을 집어넣어 무속적이지만, 가장 제주다운 느낌을 받는다. 지금은 화천사 사찰 경내에 모셔졌다고 해서 화천사 오석불로 더 잘 알려진 석상은 예전에 회천동에 이었던 큰 절이 사라지고 이 마을에 흉변이 생기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 석상의 제신(祭神)은 석불열위지신(石佛列位之神)으로 5기의 석상 가운데 모셔있다. 예로부터 여성 중심인 제주에서 남성들이 따로 지내는 동제를 포제라 하는데 세미마을 포제를 지내던 이 자리를 언제부턴가 불교가 차지하여 석상은 돌미륵으로 둔갑하여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제주도는 육지 사람들의 삶뿐만 아니라 사는 문화, 그리고 경치까지 다르다. 우리나라는 불교 문화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제주도는 그보다 먼저 무속신앙을 알아야 제주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제주에 지나가는 어르신들께 종교를 물으면 대부분이 불교라고 답한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하는 불교는 육지 내륙의 불교관이 아니고 무속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단지 불교라는 옷을 입었을 뿐 그 중심에는 계속해서 무속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 지친 옛 회천마을 사람들은 경외하던 종교는 지금은 한국불교태고종 화천사가 자리를 잡고 있지만, 본래 돌미륵이 먼저 이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회천 세미마을 석인상에서 제주 사람들 표정이 보인다.

제주 사람들의 삶은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세간은 삶의 고단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각배 타고 나간 남편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고,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조상들의 극락왕생을 축원하기 위해 부처님이 사는 도솔천에서 내려다보며 찾기 쉬운 곳에 제주 사람들은 미륵부처들을 수없이 세웠다.
미륵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뒤를 이어 세상에 출현하여 중생을 구제할 부처님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처럼 때가 되면 재림할 재림불이다.
회천동 석불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애초에 불교와 관계가 없던 존재였고 불상이라기보다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의 미륵이다. 이런 연유로 이곳에서 마을제를 지낸다. 석상의 본래 의미는 무속이었지만, 포제의 형식은 유교식인 것이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회천동 석상에 제를 봉행의 시작은 300년 훨씬 이전부터 매년 정월 첫 정일에 시작되었다. 그 후 숙종 28년(1702) 육지 이형상 목사가 등장한다. 그는 야심만만한 유교적 원칙주의를 제주도에 정착시키려고 절오백 당오백을 소실시켰던 인물이었다. 그때 회천동 석상은 유교 이데올로기로 인한 충돌로 무속과 유교, 그리고 불교가 완전히 혼합된 형태가 되었다. 그래서 여느 마을에서는 포신이나 이사신을 모시고 마을제를 지내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석불열위지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는 데 제물에는 돼지고기를 올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회천동 석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얼굴 닮은 자연석으로 모셔진 다섯 미륵은 민간에서 마을신으로 모시던 미륵불이 훗날 불교에서 흡수하게 된 것이었고 이들 미륵을 통해 제주도 신앙의 주체는 승려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어중간한 반승반속이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제주의 종교는 스님이되 스님이 아니고, 절은 있되 절 같지 않고, 신당이되 신당 같지 않다고 했듯이 탐라지를 쓴 이원진은 "풍속은 음사를 숭상하여 산과 숲, 내와 못 높은 언덕이나 낮은 언덕, 물가와 평지, 나무와 돌 따위를 모두 신으로 섬겨 제사를 지냈다"라고 했다.
회천동 석상에는 세간을 살아가는 순박한 이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슬처럼 맺혀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그 간절한 기도를 받아주는 미륵이 복 밭이 되어 더 많은 마을 사람은 상부상조와 화합 속에 지금까지 마을의 전통을 이어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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