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옛 관문…일제강점기 첫 독립만세 함성 터져 나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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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옛 관문…일제강점기 첫 독립만세 함성 터져 나온 곳
  • 한기완
  • 승인 2019.04.2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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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춘 여기 어디우꽈? 4 조천읍 조천리 ①

[편집자 주]조천리는 관덕정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북동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있다. 신촌리, 함덕리, 대흘리와 인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바다와 접한 해안마을이 조천이다. 이번 삼촌! 여기 어디우꽈? 765호에서는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를 찾았다. 조천은 일제 강점기 3·1운동 당시 제주도에서 맨 처음 독립 만세의 함성이 터져 나온 곳이다. 이글을 통해 독자들이 3·1 만세운동의 정신과 애국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한다.

삶의 이유와 존재의 의미를 가르쳐준 바다

바다. 바다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지만, 언제나 하늘과 맞닿아 있다. 바다에는 파도가 있고, 그 안에서 파도를 헤치며 살아가는 생명이 있기에 바다는 존재 이유를 갖는 것이 아닐까? 제주 사람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바다에 의지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거기에서 삶의 지혜와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바다는 파도와 더불어 제주 사람의 삶의 이유와 존재의 의미를 가르치며 긴 세월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주에서 최초로 3·1 만세운동에 불을 지핀 조천. 그 인연에는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나라에 대한 애국애족의 강인한 성품을 가진 연북정을 오간 지식인들이 있었다. 조천의 바다도 제주의 여느 바다와 마찬가지로 바다 속에서 물고기가 헤엄치고 물 위에선 사람들이 분주했다. 그곳은 많은 새로운 지식과 선진 문명을 제일 먼저 접했었기에 조천인의 불의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먼저 생각하는 곧은 절개와 기개가 오늘까지 이어오는 듯하다.

고대부터 근세 이르기까지 왕성했던 조천포구

넓은 바위 해안이 3면을 포위한 속으로 쑥 들어온 조천 포구는 배가 안전하게 정박하고 숨길 수 있는 지형으로 15세기 전반 이전부터 군사요충지로 외적 방비의 거점 지역이었다. 때문에 조천은 조천포구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조천은 육지로 나가는 배에게는 기상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풍향 관측소 역할을 했다는 데서 얻은 지명이라고도 하고 임금님께 인사드린다는 뜻과 조공이 이곳에서 이뤄졌기에 연유했다는 설도 있다.

조천바다는 제주시 산지포구, 화북포구와 더불어 제주의 오래된 포구이다. 제주로 부임하는 관리, 귀양살이 오는 유배객이나 육지를 오가는 장삿배 모두 이들 항구로 들어왔다. 떠날 때도 이곳 조천포구였기에 조천의 역사는 약 1500여 년 전 또는 8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천진은 제주에 있던 9개의 진지 중 하나로 고려 공민왕 23년(1374) 때 조천관을 세웠다는데서 부터 조천은 중앙의 무대에 데뷔했다.

강직한 선비의 고결함이 넘치는 마을

제주에서 3·1 만세운동을 최초로 일으킬 만큼 조천은 역사와 자존의 고장이다. 관문 역할을 했을 만큼 번창했던 조천이었지만, 현재는 새롭게 건설된 우회도로의 영향 때문인지 점점 더 낙후되어 가는 모습에 아쉬움이 짙어진다. 옛날에 영광이 다시 재현되는 그 날이 하루바삐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조천의 옛 선현들이 지나갔던 그 현장을 들춰봤다.

조천초등학교를 지나 분선동산교차로에서 연북정으로 200m쯤 내려가면 도로변 폭낭 아래에 조천비석거리가 있다. 조천포구는 제주를 드나드는 관문이었기에 부임하거나 이임하는 목사와 판관 등의 자신의 공적이나 석별을 기리는 비를 세우고 이곳을 떠났다. 비석은 오랜 세월에 풍화되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많이 되었지만, 비석 주인들이 제주를 떠나오며 이곳을 지나갔던 그들의 애절한 마음은 지금도 전하는 듯하다.

조천포구가 시작되는 곳에는 연북정이 자리하고 있다. 연북정에 오르면 서쪽으로 펼쳐지는 조천포구를 따라 멀리 원당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주변으로 한라산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오름과 해안선이 아름다운 곡선을 따라 펼쳐진다. 연북정 너머로 큰 파도가 몰려왔다가 바위와부딪쳐 하얀 포말이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으면 갈매기 울음과 해조음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낸다. 조선 시대 때 연북정에 올라와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사모하던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마음이 조천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준 듯하다. (다음호에 계속)

=연북정에서 제주시의 반대방향에 있는 조천연대로 다가서자 연대를 둘러싸고 있는 바위들이 먼저 객을 맞는다. 바위를 밟고 오르면 시야가 시원스럽게 열리면서 조천연대의 모습이 드러난다. 전망이 좋은 비탈에 현무암으로 각이 지게 이를 맞추어 쌓은 연대는 그 이름보다는 그와 어우러진 풍경이 더 정겹다.

<한기완 기자 / hankiwan@hanma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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