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랑 쓸개는 장롱에 딱 걸어두고 나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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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랑 쓸개는 장롱에 딱 걸어두고 나오기
  • 오재석 서귀포시 남원읍
  • 승인 2023.03.1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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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석 서귀포시 남원읍
오재석 서귀포시 남원읍

18시 정각 퇴근 후, 신나는 마음으로 부리나케 집으로 도착을 했다.

저녁을 맛있게 해치운 후, 오늘은 무엇을 봐볼까 하며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인간극장이 떡 하고 나왔다.

제목은 ‘성구씨의 맛있는 인생’ 이었다.

맛있는 인생?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며 시청하기 시작했다.

30살 초반으로 앳되보이는 얼굴을 한 남성이 누나와 가족들과 함께 전라도 시장을 돌아다니며 과자를 파는 일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한 5부작 기획물이었다.

어릴적 트로트가 좋아 서울로 상경해 트로트 공부를 하던 그는 아버지의 빚보증으로 가업이 기울며 고향으로 내려와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과자 장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과 그의 나이 23이었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이곳저곳 시장을 다니며 손님을 상대한 그는, 다큐멘터리에서는 32살의 어엿한 사장님의 되어 손님상대의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그가 32살의 베테랑이 되기 전의 생활이 궁금하던 찰나, 유쾌한 트로트와 구수한 농담으로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하며 그들의 무거웠던 지갑을 가볍게 만드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맛있게 과자 장사를 하려고 하는 그이지만 항상 이렇게 맛있게 장사를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그. 여러 손님들 중에는 무례한 손님들도 더러 있을 수 밖에 없다.

성구씨의 친누나가 혼자 가게를 보던 도중,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오셔서 지나친 농담을 하는 모습이 나왔다.

자신의 가족이 이러한 일을 당한다면 어떨까? 아무리 베테랑 장사꾼이라도 이러한 순간에는 감정이 앞서기 마련이지만, 성구씨는 달랐다. 오히려 어르신에게 먼저 인사함으로써 친누나에게 농담을 못하도록 자기에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후 인터뷰에서 성구씨의 말은 나의 민원대 생활을 다시 돌이켜보게 했다. “시장에 나오면 모두 다 손님입니다.

내 장사하는 곳에서 싸우고 있으면 저도 똑같은 사람이 되잖아요.

그래서 지는 게 이기는 거라 생각하고 제가 집에 간이고 쓸개고 장롱에 딱 걸어놓고 나오는 이유는 화도 집에 걸어놓고 나오려는 거에요.” 읍사무소로 오시는 분들 모두 다 똑같은 민원인인데, 가끔 나도 모르게 같이 언성 높이고 싸운 적이 더러 있다.

민원 업무를 1년 6개월 이상 하다 보니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생각보다는 나도 같은 사람인데 왜 참고만 있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러한 나에게 성구씨의 인터뷰는 민원업무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남은 공무원 생활을 성구씨처럼 맛있게 풀어나가보려고 한다.

이제 출근 전에 간이랑 쓸개는 장롱에 걸어놓고 민원인을 대해보려 한다. 순간순간 피곤하고 귀찮은 마음이 들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들이 나를 잡아먹지 않도록 지는 게 이기는 거란 생각으로 남은 민원업무 기간에 민원인들을 대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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