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것이 곧은 것'이란 지혜를 깨닫게 하는 '생각하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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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것이 곧은 것'이란 지혜를 깨닫게 하는 '생각하는 정원'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06.28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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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는 '깨닫는 진리'를 통해 "나 자신을 바꿔 가는 과정"
생각하는 정원에 이르면 가만히 비추어지는 마음이 있다.
생각하는 정원에 이르면 가만히 비추어지는 마음이 있다.

외롭고 험한 산길을 오르면 어김없이 오롯이 홀로 서 있는 소나무. 찾아오는 이도 없기에 기다리는 이도 없는 그곳에 푸른 산빛과 쪽빛 하늘도 그대로 담아 무연히 흘러간다. 가다 보면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다 보면 깨달아질까? 마음을 여는 곳, '생각하는 정원'에 이르면 가만히 비추어지는 마음이 있다. 소박한 마음, 기도하는 마음, 꾸미지 않은 마음, 그렇게 돌하루방의 미소처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에는 굽은 것이 곧은 것을 이르는 지혜가 있다.

멀리 보이는 저지오름이 생각하는 정원으로 가는 등대 역할을 하는 듯 우리의 발길을 인도한다. 생각하는 정원으로 오는 사람들은 부러 먼 길을 돌아 이 길로 돌아서 들기도 하고, 걸어서 오든가, 자전거로 오는 이들도 있다. 이는 주변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생각하는 정원으로 가는 길, 이름처럼 마음의 빗장을 여는 여정으로 삼는 까닭은 아닐까 싶다. 
생각하는 정원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엄마의 젖무덤처럼 가냘픈 선의 아름다움으로 제주의 오름을 형상화한 언덕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언덕 아래로 연못이 눈에 띄고, 그 위에는 선문답이라도 던지듯 혼자 겨우 거닐 수 있는 돌다리가 놓여있다. 이 다리를 건너 정원에 들어가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인 생각하는 정원의 속살이 펼쳐진다.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생각하는 정원'은 성범영 농부가 1968년부터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의 황무지를 개간하면서부터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성범영 원장은 잘사는 농촌을 만들기 위한 꿈 하나로 "하면 되겠지"라는 일념으로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되어 1963년부터 배를 타고 30여 차례 제주를 찾았다. 당시에 제주시에서 버스로 4시간가량을 타고 들어와야 할 정도로 오지 중에 오지였던 이곳에 1968년부터 성 원장은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황무지를 개간하고 돌담을 쌓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돌밭과 가시덤불에 묘목을 심고, 자갈을 주어 돌담을 쌓고 수도 없는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고행의 길이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수도와 전기도 없었던 시절 8년간을 호롱불을 켜고 빗물을 받아 밥을 지어 먹어야 했다.

그는 하루하루를 쉴 틈 없는 강행군을 펼치며 기술 습득을 위해 나무를 가꾸는 선배들을 찾아다녔고, 분재 소재를 위한 정원수 구매에도 열성을 다했다. 그러면서 인부들과 돌을 깨고 땅을 파고 그러는 가운데 크고 작은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는 것은 다반사였을 뿐만 아니라 실의와 좌절에 빠질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심은 나무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고 각각의 개성 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모하면서 성 원장을 위로해 주었다.

1963년 성범영 원장의 제주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20여 년간을 15만 톤의 돌과 흙을 쌓고 또 쌓으면서 1992년 마침내 전체 면적의 3만여 제곱미터의 생각하는 정원을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왜? '생각하는 정원'일까요의 물음에 성범영 원장은 "사람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제 때 잘라내고 변화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며 "인간과 자연, 그리고 예술이 융합된 이 정원을 관람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반세기에 걸쳐 이 정원을 만들고 가꾸어오는 동안 말없는 식물들로부터 많은 지혜와 철학을 터득하게 되었고, 국내외 수많은 지식인과 만나 대화를 통해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며 "나무만큼 정직한 것이 없듯이 나무 곁에서 깊이 사색을 하다 보면 누구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나무는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1968년부터 본격적인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 속에 생각과 집념이 집약된 그의 개척정신은 생각하는 정원의 철학이 되었고, 곳곳에 새겨진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 놓은 이야깃거리는 이곳을 찾는 방문객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울림으로 다가선다.

아직도 새벽 3시에 눈을 뜨고, 땅을 고르는 분주한 손놀림의 그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감자 한 알, 배춧잎 한 장도 귀했던 시절부터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것을 해야 저것을 얻을 수 있음을  '생각하는 정원'은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고 있다.
조용한 정원에 소나무 전정 소리가 경쾌하다. 성 원장의 전정가위 솜씨는 날카롭고 낯설지만, 정겨운 풍경이다.

바르게 가기보다는 돌아서 가고, 그렇게 마음의 뜨락을 열어가는 곳. 그곳에 세계인이 보고 놀란 가장 아름다운 정원, 생각하는 정원이 있다.

가장 곧은 것이 마치 굽은 듯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가 마치 서툴게 보이듯 생각하는 정원은 작지만 넉넉한 풍경으로 빛바랜 정겨운 얼굴로 굽은 것을 곧은 것으로 이루는 지혜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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