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어업 침탈 상징 잠수기어선… 96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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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어업 침탈 상징 잠수기어선… 96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 제주관광신문
  • 승인 2019.07.0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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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한 마을 어장에서 주민들이 어패류 등을 잡고 있는 모습
도내 한 마을 어장에서 주민들이 어패류 등을 잡고 있는 모습

잠수기어업이란  8톤 미만의 동력어선으로 잠수부가 직접 해저에 입수하여 갈퀴(호미)나 분사기를 사용하여 해저바닥에 서식하는 매몰성 수산동식물을 포획·채취하는 어업이다. 잠수기어업이 일본에서 들어온 시기가 1900년쯤이다. 일본에서 기기어선 12척과 운송선 5척을 들여 온 사람은 가파도에 근거지를 둔 요시무라(吉村)이다. 이 당시에는 성산포 등에 잠수기 어업용 막사가 30호나 되었다. 제주연안에서 일본인들이 어업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어장 수탈과 침탈의 역사가 이 시기부터 시작이다.

1910년도가 되자 점차 그 어선수가 줄어 5척이 가파도, 서귀포, 표선, 성산포, 행원 등지에서 조업도 하고, 잠수기어업용 막사도 10호까지 감소한다. 자체적으로 조업구역도 정해 성산포에서는 행원-표선, 행원은 우도-제주읍, 표선에서는 서귀포-성산포, 서귀포는 세화-사계, 가파도에서는 차귀도·비양도-서귀포 까지 선주별로 독점조업을 하고, 비양도에서 애월 사이에서는 자유롭게 조업을 했다. 

잠수기 어선의 조업 시기는 매년 8월에서 다음 해 3월까지이며, 4월부터 7월까지는 강원도 등지에서 조업한다. 주로 전복과 해삼을 채취하는데 전복은 8월부터 12월까지, 해삼은 1월에서 3월까지다. 조업 수심은 20심(1심:1.8m) 정도의 연안까지로 제한한다.  어획량은 한 달에 1척당 육량(肉量) 100근(1근:600g), 패각 900근의 전복과 600근의 해삼을 채취한다. 어획물의 처리 유통방법도 전복은 네 말통에 3일간 염장한  후 삶은 다음 말려서 마른 전복을 만들었다. 해삼은 탈장을 한 후에 한번 삶고 소량의 식염처리하고 하루가 지나면 삶아서 말리면 마른해삼이 된다.

마른 전복 100근에 타 지방에서는 90원하면 제주산은 95원정도로 비싸다. 전복패각가격도 100근당 6원50전 정도였다. 해삼도 타지방 가격이 55원하면 75원 하는 게 품질은 전복인 경우에는 가파도에서 서귀포까지는 크기나, 품질이나, 모양도 좋다. 그다음으로는 우도전복, 제주읍에서 차귀도까지는 크기가 적고, 패각도 나쁘다. 크기는 한때는  8촌(1촌:3.03cm)에 1자(1자:0.303m)까지이며 보통 6촌내외이다.

해방 후에 수산업법을 제정하고 잠수들의 나잠어업을 하는 공동어장 면허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어선어업의 종류로 잠수기어업도 제도권에 존재하게 되자. 1967년 17척이 있고, 무허가 잠수기 어업이 기승을 부렸다. 특히 잠수기 어선이 공동어장에 침범해 불법조업을 함으로써 잠수와 갈등이 많았다. 이로 인해 고질적인 조업분쟁을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소라자원이 급감하는 원인도 잠수기 어선이 무분별한 남획에 있다고 진단하게 된다.

따라서 잠수와의 분쟁과 소라자원보호를 한다는 목적에서 잠수기 어선을 매입해 감척하는 정책을 수립한다. 당시 고계추 어업지도과장의 진두지휘로 어선 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을 한 결과 1991년 지방비 예산을 1,200백만 원(도 72, 시군 288, 수협 840)확보해 1차적으로 21척을 수협에서 매수해 감척했다. 1993년 6월 19일 개정된 수산자원보호령에서 잠수기어업 허가정수를 24척을 삭제하고, 불응한 3척은 불허가처분에 대한 행정소송결과 1996년 6월 11일 대법원에서 패소하면서 나머지 3척도 감척을 하게 된다.    

결국, 조선 말기부터 일본인들의 의한 대표적인 제주어업침탈 상징이며, 정착성 고급어종인 전복, 해삼, 문어 등을 남획을 하고 고갈시켰던 잠수기 어선이 어업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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