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나무 숲에서 실려오는 '피톤치드'로 마음의 번뇌가 '싹'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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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나무 숲에서 실려오는 '피톤치드'로 마음의 번뇌가 '싹'없어진다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07.1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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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오등동에 위치한 축산과학단지에서 본 한라산 모습.
제주시 오등동에 위치한 축산과학단지에서 본 한라산 모습.

숲과 계곡, 그리고 하늘이 파노라마가 되어 장관을 연출하는 아라동 역사문화탐방로. 산천단에서 출발한 코스는 파란하늘이 보이는가 싶더니 다시 숲길로 이어진다. 가파른 비탈 등성이에는 소나무와 삼나무가 무성하여 소산오름 형체를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시야를 가린다.

잡목이 우거진 숲길이 끝나자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진 편백나무 숲이 나온다. 이곳에 들어서자 마음에 온갖 번뇌는 모두 다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에 실려 오는 피톤치드가 온 몸을 감싸는 듯하다.  

피톤치드가 넘쳐나는 편백나무 숲길.
피톤치드가 넘쳐나는 편백나무 숲길.

녹색 숲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후각은 피톤치드의 상쾌함을 느끼게 한다. 나무와 풀잎을 만져보거나 새소리,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세상과 만나게 된다. 편백나무 숲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면서 저절로 면역력이 높여 준다고 한다.

이곳에 들어가 보면 누구나 알 것 같다. 편백나무 아래에는 이곳저곳에 평상이 깔려있다. 평상 위에 자리를 깔아 눈을 살며시 감고 시선이 머무는 한 점에 온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마음이 평온해 오면서 머리가 맑아 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숲길 내에는 참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 수십 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노루, 오소리, 족제비, 다람쥐 등 다양한 동물(포유류, 조류, 파충류, 곤충)이 살아가고 있다. 아라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선조들이 왕래하던 한라산 옛길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면서 시민의 건강증진과 역사문화 학습장으로 숲길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2코스의 끝 지점에는 먼저 출발했던 탐방객들이 이미 도착해있다. 오색빛깔 찬란한 등산복차림의 탐방객들은 화려한 복장으로 초록의 숲길을 물들이고 있다. 숲은 마음치유를 위해 사람들을 숲속으로 불러들이는 것 같다.

소산오름을 빠져나와 삼의악 기슭으로 들어서서 진지동굴을 지나 칼다리폭포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누었다가, 도착지 1km미터 지점에서 만난다.

냇가로 내려가면 신령바위 등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즐비하다.

척박한 지리적 환경과 역사적인 사건들로 인해 제주 사람들은 자연신에 대한 경배를 통해 무속신앙이 생기게 되었다. 제주무속신앙을 살펴보면 그 중앙에는 신 중에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제왕이라는 제석천 왕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불교가 제주의 정신적인 문화를 지배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역사를 같이 해온 제주불교가 제주인의 마음속에 면면히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당굿이나 상엿소리에 나오는 사설들을 살펴보면 석가여래, 극락, 미륵, 제석천왕, 연화세계 등이 불교 용어들이 곳곳에 들어있는 것으로 봐도 분명 불교와 제주무속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는 불교와 결합한 불교적 무속신앙이 제주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음사 입구 모습.
관음사 입구 모습.

제주불교 근현대사의 중심지

아라동 역사문화탐방로는 한라산 관음사에서 멈춘다. 한라산 관음사는 우리나라 3대 영산 중에 하나인 한라산 해발 650m에 위치한 한라산관음사는 이름난 큰 스님이 원력으로 세워진 여느 대형사찰과는 달리 제주 추신의 비구니 안봉려관 스님에 의해 1908년 10월 창건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사다.

한라산 관음사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오래된 은행나무가 먼저 나와 우리 일행을 반긴다. 대웅전 앞마당에 떡 버티고 서있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는 관음사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굴곡진 역사의 현장을 함께 했을 것이다. 은행나무의 넓게 펼친 팔은 참혹한 역사를 증언하기 위해 서 있고, 한라산의 넓고 울창한 품으로도 감출 수 없는 슬픈 역사가 강물처럼 흐른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은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산길은 더 이상 삶의 길이 아니었다. 온 산을 뒤덮었던 총성과 포연에 모든 생명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순박한 민초들을 향해 총을 일방적으로 겨누었으며 야생화의 꽃잎처럼 무수히 떨어져 나간 생명, 4·3역사의 소용돌이로부터 관음사 또한 무사할 수가 없었다.

관음사가 4·3의 무장대를 숨겨둔다는 토벌대 첩보에 따라 국군이 무장대 소탕 작전으로 관음사는 완전히 전소되고 말았다. 17세기 이형상목사의 제주불교 훼철 후 다시 새롭게 제주불교를 세우려는 꿈마저 사라져버리려는 순간이었다. 그 후 1954년 도남동 보현암을 창건하면서 다시 제주불교를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제주불교 근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는 성지이다.

도심에 시끄러움도 지나 울창한 녹음을 따라 걷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도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렇게 한 걸음 한걸 음이 다다른 길, 한라산에 영험함을 느낄 수 있는 아라동 역사문화 탐방로에는 어머니 품과 같은 포근한 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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