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을 만들어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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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을 만들어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로길'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07.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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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길에서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게 된다."
항일운동의 발상지인 법정사지 옛 터 모습.
항일운동의 발상지인 법정사지 옛 터 모습.

제주 섬 중앙에 신비스럽게 우뚝 서 있는 한라산은 옛 사람들은 영주산이라 부르며 삼신산의 하나로 여겨 정상에 오르는 이는 그리 흔치 않았다고 전한다.
이렇게 영험하여 아무나 접근할 수 없었던 한라산에는 오백장군이라고도 불리는 500개의 기암 바위들이 영실 계곡으로 한라산 정상을 향하거나 서귀포 바다를 향해 쳐다보고 있다.
이를 보고 거친 자연과 맞서 살아온 제주 사람들은 석가여래가 열반 후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이 세상에 불법을 수호하기 위해 거주하는 부처님 500명의 제자인 '오백나한'이라고 믿으며 한라산 영실을 영험함이 넘치는 곳으로 여겨왔다.
특히 예로부터 제주 사람들은 오백나한에게 빌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소박한 '미륵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라산은 아이를 주는 미륵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미륵의 세상을 이루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백나한이 상주하는 영실과 이어지는 '불래오름'의 불래(佛來)도  '하늘에서 온 미륵부처들이 있는 산'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영험한 기운이 넘쳐나기 때문에 제주 사람들에게는 산 자체가 의지처이면서 기도처였다.

영실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세존사리탑이 있는 존자암 모습.
영실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세존사리탑이 있는 존자암 모습.

영실 입구 주차장에서 세존사리탑이 있는 존자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사시사철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겨울에 들어선 존자암 입구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에 흰 눈이 덮인 사이로 백골만 앙상한 나무들이 마치 수행자가 수행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고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고 만물이 소생하며 수많은 식물이 꽃피는 향기 그윽하다.
녹음이 우거지고 흰 구름과 안개가 감도는 여름철이 되면 신선과 선녀가 금방이라도 내려 올 것 같고 가을이면 기암절벽사이로 단풍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이루는 곳이다. 이렇듯 영실은 사계절 각각이 옷 색깔이 다르며 미륵부처님이 오시기에 충분한 곳에 존자암이 자리하고 있다.
서귀포시 하원동에 소재 불래오름 남서 능선 1300m 지점 계곡 남동향에 있는 존자암은 제주에 삼성(고·양·부)이 처음 일어난 탐라국 시대 때 창건되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특히 존자암은 부처님의 16 아라한 중 발타라존자가 불법을 전하기 위해 제주도 와서 수행하면서 불교를 전하였던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존자암에는 한·중·일 불교 최초 전래지로서 탐라국 제6존자 발타라존자가 2550년전 인도에서 모셔온 세존사리탑이 모셔져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탐라국 역사와 한국불교역사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성스러운 성지이기도 하다.

중문동 하원 마을에 논을 만들어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로길 걷고 있는 모습.
중문동 하원 마을에 논을 만들어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로길 걷고 있는 모습.

영실주차장에서 영실등산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500m 올라가다 남쪽 길가에 하원 수로길로 인도하는 안내표시판이 보인다. 그곳에서부터 밑으로 내리는 길이 하원 수로길이다. 서귀포시 중문동 하원 마을에 논을 만들어 주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로길이다. 1950년대 후반기 전국적으로 6·25전쟁을 겪은 후 빈곤에 허덕일 때, 더욱이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영실물과 언물을 하원 저수지로 보내어 논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수로길을 조성하였다.
그 후 주변 도로들이 개설되기 전까지는 한라산 등반코스로 이용했던 길이었다. 이 길은 영실 존자암과 불래오름, 숯가마 터, 무오항일발상지 법정사, 화전마을터전 등 역사, 문화와 관련된 유적들이 산재해 있어 조상들의 삶의 추억이 깃든 생태문화 탐방로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움막을 짓고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대표적인 산열매인 표고버섯과 시로미, 그리고 오미자를 채취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조선시대 때 제주로 유배 온 충암 김정이가 남긴 '제주풍토록'에는 토산물 중에 표고가 가장 많다는 기록이 있듯이 한라산의 기후와 토양은 표고 발육에 가장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표고의 수확이 대부분 추운 겨울에 이루어지는데, 표고 재배사를 둘러보면서 표고 채취를 위해 산속을 헤매던 백성들의 고초를 생각하며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원수로 길이 한라산 둘레길과 만나는 곳에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지가 있다.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은 기미 3·1운동보다 5개월 먼저 일어난 제주도 내 최초 최대의 항일운동이자 1910년대 불교계가 일으킨 전국최대 규모의 무장 항일운동이다. 1919년대의 3·1운동을 비롯하여 민족 항일의식을 전국적으로 확산 시켜 나가는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항일운동의 발상지인 법정사지는 '법정악'능선 해발 680m 지점에 있으며 당시 항일지사들의 체포와 동시에 일본 순사들에 의해 불태워졌고 지금은 축대 등 일부 건물 흔적만 남아 있다.
하원수로 길을 걷다 보면 자연과 함께 옛 제주 사람들이 삶을 돌아보고 선연들이 애국 애민 정신을 통해 나의 인생관과 가치관 그리고 삶의 방향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하원수로 길에서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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