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선 불빛이 밤바다에 비추며 '불야성'을 이루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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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 불빛이 밤바다에 비추며 '불야성'을 이루는 곳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08.25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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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사람들은 지친 가슴을 위안받고 염원을 담는다
제주시 탑동 방파제와 멀리 사라봉 모습.
제주시 탑동 방파제와 멀리 사라봉 모습.

  제주의 아름다운 곳 열 군데를 뽑은 영주 십 경 중에 하나인 산지 포구. 어둠이 짙어 갈 때면 수백 척의 어선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면, 그 불빛이 밤바다에 반사되어 불야성을 이루는 장관과 산지 포구에서 한가로이 낚시하는 낚시꾼이 주변 풍경과 어울려 낭만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탑동 해안가에서부터 산지 포구를 지나 사라봉까지 이어진다.

  육지와 바다가 하나가 되어 수평이 되는 탑동 해안가는 세상에 가장 낮은 곳에 있지만 언제나 하늘과 맞닿아 있다. 바다에는 파도가 있고 그 안에 파도를 헤치며 살아가는 생명이 있기에 바다는 존재 이유를 갖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무연한 바다속으로 하루가 저물어 간다. 천년세월 훨씬 이전부터 이곳 사람들이 살기 시작할 때부터 낙조를 보며 바다를 일터 삼아 살아온 제주 사람들이 눈에 선하다.

아이들이 자전거와 인라인도 타고 족구도 할 수 있는 탑동광장 모습.
아이들이 자전거와 인라인도 타고 족구도 할 수 있는 탑동광장 모습.

  탑동 해안가는 원래는 '탑알'이라 불렸다. 병문 내 하구 바닷가에 돌담으로 3m 높이로 쌓았던 돌탑이 2개가 있었다는데 유래가 되었다. 이 돌탑은 주술적인 토속신앙으로 어부들이 안녕과 바다의 액을 막고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졌었다. 특히 고기들이 많이 몰려왔거나 만선이 기쁨을 함께 나눌 때와 그리고 외적이 침입하면 이 탑 위에 올라 고동을 불어 여러 사람에게 알리던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에 의해 1927년부터 산지 포구 축항공사를 하면서 무근성터의 돌담과 제주성담을 운반하여 공사할 때 이 탑의 돌도 함께 사용하여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탑알에서 가져온 돌로 축조했던 옛 이름, 산지 포구인 제주항 서부두까지는 제주 사람들의 삶이 묻어있다.

  제주는 삼다의 섬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주에는 세 가지 보물, '삼보'를 갖고 있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제주의 삼보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바다 자원, 제주 사람들만 발음할 줄 아는 제주 언어와 독특한 고유의 민속을 말한다. 그 가운데 깨끗한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이 유통되는 곳이 산지 포구이다. 포구는 고깃배로 늘 분주하다. 어둠이 드리워질 때면 산지 포구 앞바다는 집어등 불빛 속에서 제주 사람들의 강인한 삶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한라산에서 내려 온 물은 이곳 바위틈에서 나와 제주 사람들의 생명수를 제공했던 곳 산지천.
한라산에서 내려 온 물은 이곳 바위틈에서 나와 제주 사람들의 생명수를 제공했던 곳 산지천.

  탑동 해안가에서 산지 포구를 지나면 산지천으로 이어진다. 산지천은 한라산 관음사 남쪽 해발 약 720m 지점에서 발원하여 아라동을 거쳐 제주시 내 곳곳을 지나 제주항을 통해 바다로 나간다. 제주의 하천은 대부분이 건천인 데 반해 산지천은 한라산 저 먼 곳에서 발원한 물은 이곳 바위틈에서 세상에 나와, 제주 사람들의 생명수였다.

  예전에는 제주의 어머니들은 새벽에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가장 깨끗한 물을 떠다가 자신이 믿는 부처님이 있는 절 쪽을 향해 올리고 난 후 다시 조왕신에게 올리면서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정성을 다했던 물이다. 유유히 흐르는 산지천에는 옛 제주 어머니들의 삶에 간절한 정성과 지혜가 아직도 바위 구석구석에 묻어있다. 관광은 이런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이 흥미를 더할 것이다.

  산지천을 빠져나와 제주항 입구에서 만덕로로 들어서면 건입동 동사무소 맞은편에 복신 미륵이 서 있다. 동자복으로 잘 알려진 복신 미륵은 자복(資福), 자복미륵으로 '큰 어른'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그 형상이 특이할뿐더러 다공질 현무암으로 조성된 석상으로 자식을 얻기 위한 제주 사람들이 기자 신앙을 느낄 수가 있는듯하다.

  해륜사에 위치한 서자복과 함께 동자복은 둘 다 달걀 모양의 둥그스름하고 얌전한 얼굴에 벙거지 같은 감투를 써서 할망과 하르방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제주시를 애호하고 있다.

  미륵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뒤를 이어 세상에 출현하여 중생을 구제할 부처님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처럼 때가 되면 재림할 재림 불이다. 서자복과 동자복 미륵부처님은 제주의 미래를 내다보며 걱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앉아 있지 못하고 서서 천리안으로 세상을 앞질러 보는 듯하다.

  우리나라 곳곳에 세워있는 미륵부처님은 보통 투박하고 거칠게 민간인들의 손에 만들어져 볼품이 없지만, 무척 친숙한 느낌인 것처럼 서자복과 동자복 역시 제주 사람들의 얼굴을 닮아있다.

  제주에서 만나는 어디에든 얽힌 사연과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들은 긴 세월을 거치면서 마침내는 전설이 되어버린다. 그 전설에 사람들은 지친 가슴을 위안받고 염원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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