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관광객·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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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광객·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곳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09.3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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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두봉 ~ 용두암을 잇는 해안도로는 용이 승천 못한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용은 승천하지 못한 한과 고통으로  울부짖다가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는 용두암 모습.
용은 승천하지 못한 한과 고통으로 울부짖다가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는 용두암 모습.

  도두봉에서 용두암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많은 관광객과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길로 유명하다. 밤에는 오색찬란한 조명등이 밤을 환하게 밝히고, '카페의 거리'와 어우러져 연인과 관광객들에게 해안도로는 또 다른 매력을 심어준다.

  도두봉 둘레 길을 한 바퀴 돌고 빠져나와 계속 걷다 보니 온몸은 땀으로 젖어오고, 바닷바람을 피하려고 입었던 등산용 겉옷을 벗어 던져도 이마에 땀방울은 멈추지 않는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세상만사 시름이 눈 녹듯 잊어버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심신이 정화되어 마음은 절로 편안해 온다.

용담해안도로 어영마을 방사탑 사진.
용담해안도로 어영마을 방사탑 사진.

  용담3동 어영마을로 들어설 때쯤이면 고즈넉하고 조용한 해안 길에 용다서해안로 방사탑이 서 있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기가 약하다고 믿는 곳을 보호하고 액운을 막기 위해 세운 돌탑이다. 탑 위에는 사람이나 새 모양의 형상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이 때문에 거욱대, 거욱, 거왁, 극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주도의 방사탑은 1995년 8월 26일 제주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고, 제주 전역에 38기 방사탑이 남아 있다. 그 중 17기가 민속자료를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이러한 방사탑은 마을의 안녕을 보장하고 수호해 준다는 신앙이 있음에 따라, 이 지역에도 이를 모방하여 2009년 9월부터 희망프로젝트사업으로 지역 주민들의 염원을 모아 방사탑 5기를 새롭게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용담레포츠 공원에 있는 예비 검속자 학살 위령비 사진.
용담레포츠 공원에 있는 예비 검속자 학살 위령비 사진.

  어영마을 방사탑을 지나 1km 떨어진 곳에는 예비 검속자 학살 위령비가 서있다. 1950년 6·25사변으로 정부에서는 후방의 민심교란을 우려하여 치안국장의 명의로 전국경찰에 요시찰 인물 전원을 구금할 것을 시달했다. 이것이 바로 비극을 몰고 온 '예비검속령'이었다 이 미명 아래 제주도 관하 4개 경찰서(제주, 서귀포, 모슬포, 성산포)에서는 선량한 공무원, 교사, 보도연맹원, 농민, 학생,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물경 1500여 명을 구금했다. 당시 전황은 악화 일로를 거듭해 부산마저 함락되면 수도를 제주도로 옮겨야 할 상황이었다. 따라서 사전에 이곳을 반공기지화 하여 두려는 무모한 발상에서 무고한 예비 검속자를 현재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가 위치한 곳에서 무참히 학살하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자행하였던 것이다. 도두에서 용두암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에는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가 있다.

  시대는 흘러 평화의 시대가 도래해 해안도로에도 희망이 넘쳐난다.

  "옛날 용궁에 살던 이무기 한 마리가 하늘로 승천하고 싶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한라산 신령의 옥구슬을 가지면 승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용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신령의 옥구슬을 훔쳐 나와 용연 계곡을 통해 무사히 몸을 숨겨 빠져 나왔다. 그리고 용연이 끝나는 바닷가에서 승천하려는 순간 산신령께 들키고 말았다. 대노한 한라산 신령은 화살을 쏘아 용을 바다에 떨어뜨렸다. 용은 승천하지 못한 한과 고통으로 몸을 뒤틀며 울부짖다가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위로 변해버렸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용두암에 발길이 닿으니 내국인보다는 중국인과 각국의 외국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한라산 계곡물이 한 내를 따라 내려오다 용연에 닿으면 절로 수평이 되는 바다가 된다. 용연은 용이 살았던 연못으로 그 영험함 때문에 예전부터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며 도민의 안녕과 편안을 기원했고,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옛 선인들이 풍류를 즐겼던 명소였고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세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을 해녀와 어부들은 가정과 바다 밭에서의 무사 안녕과 해산물의 풍어 등을 기원하기 위해 마음의 텃밭인 미륵도량 해륜사를 세웠다.

  절 동산은 '해륜사'란 절이 있었던 데서 생긴 이름이다. 그리고 이 주변에 있는 밭을 '절왓'이라 하여 절터 또는 절 근처의 밭이란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볼 때 서자복이 있는 해륜사는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대찰로 추정할 수가 있다. 

  제주시 동한두기 절동산에 위치한 해륜사는 제주에는 몇 안 되는 천년 가까운 세월을 같이 해온 오래된 가람이다.  '한데기 동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 절의 창건 시기는 고려 시대로 추측되며, 18세기 중기 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후로도 이곳은 민초들이 뱃길 나선 남편이 무사안녕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기도처로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1910년경 용화사로 재 창건되어 오늘에 이르다가 다시 옛 이름 그대로 해륜사로 사명을 변경하여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고 있다.

  가람 뒤로 펼쳐있는 용연은 푸른 녹음이 물들어 가고 구름다리 위로는 관광객들로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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