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관 건립에 앞서 '전시자료 수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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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건립에 앞서 '전시자료 수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제주관광신문
  • 승인 2019.11.1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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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어촌민속전시관을 만들 것인가를 구상한다. 제주에서는 내로라하는 민속학자, 문학자, 역사학자 등으로 자문위원회를 꾸렸다. 어촌민속전시관 주제 선정에 다소 의견을 달리하는 민속학자는 참여를 거부하기도 했다. 어촌민속전시관 건립이란 무지에서 어떤 흔적을 담아낼까 하는 기본계획을 마련하는데 자문을 얻기 위해서다.

어촌민속전시관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실시설계와 함께 전시설계도 같이했다. 어촌민속전시관 전시 개념은 해녀 중심에서 제주 어촌문화를 담는 것으로 결정했다. 전시설계 참여 업체였던 ㈜시공테크는 이 분야에서는 최고의 기업이다. 그런데 다섯 차례나 전시설계 승인을 거절했다. 이 무렵 전국 4개소가 선정돼 어촌민속전시관사업이 추진하게 된다. 다른 지방의 어촌민속전시관 전시 설계도에 제주 지방의 겉모습만 입혀서 납품한 것이다. 제주도의 문화의 차별성이 없고, 타지역 전시관의 전시 동선과 비슷하기 때문에 불합격을 시켰다. 제주의 특징을 간파할 수가 없었던 ㈜시공테크의 전시 설계자 탓도 있다.

문제는 해녀에 대한 민속자료도 없고 유물도 없기 때문에  패널과 사진 위주의 전시 설계때문이기도 하다. 할 수 없이 제주 업체를 하도급업체로 선정하고 공동 설계를 하게 했다. 어떻게 하면 살아서 생동하는 전시관을 만들까 하는 고민에 고민을 더했다. 마침 광장에 초가집을 짓고 판매장 등을 하려고 구상 중에 있었다. 참신한 생각이 떠올랐다. 초가집을 전시관내에 지어서 잠수의 집으로 전시하고 잠수의 일생과 일상을 전시하자고 강력히 주문했다. 부족한 전시 자료 대신 초가집을 전시물로 이용함에 따라 전시 설계는 특별함이 묻어났다.

그렇지만 전시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제주도청 문서 보관실 또는 수협창고마다 자료를 찾기 위해 필자가 직접 나섰다. 모 수협 창고에서 헌 문서 더미 속에서 앨범이 눈에 띄었다. 잘 만들어진 앨범을 펼쳐보았다. 1967년쯤에 제주 해녀를 청와대로 초청해서 고 육영수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다. 가슴이 뛴다. 보물을 찾았다. 얼마나 귀중한 유물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 당시에는 대표 시절이다. 박근혜 대표의 카페에 고 육영수 여사의 귀중한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는 것을 올린 적도 있다.

제주전역에 어촌민속자료, 소중기, 테왁 등을 수집하는 공고도 냈다. 실물자료를 얼마만큼 전시하느냐가 어촌민속전시관 품질을 높이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기증한 도민에게는 박물관 건립에 참여한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입구에 명단 기록해서 전시했다. 이런 유물자료에 목말라 절실할 때 구세주 한 분이 나타났다.

바로 고 강대원 해녀 연구가 이다. 평생 제주 해녀의 권익 신장에 앞장섰고, 제주 해녀 책도 쓰고, 자료도 많이 수집해 있었다. 마침 강 선생님의 고향인 하도리에 어촌민속전시관이 들어선다는 자체가 매우 기뻐했다. 그래서 평생 모은 테왁, 망사리, 저술 책자 등을 흔쾌히 기증도 해주었다. 필자는 어려울 때마다 자문을 받으려고 전화만 하면 즐거운 듯 서울에서 달려오시곤 했다. 전국적으로 전시 유물을 수집해서 조달해준 고운당 사장도 한몫을 해주었다.

한마디로 필자는 박물관에 미쳐있었다. 늘 상상해야 한다. 오전에는 북제주군 사무실에서 오후에는 박물관 현장에서 (주)성지건설 김문진 소장과 직원들, 전시 하도급업체 (주)BMB 전경헌 이사를 필두로 감리, 전기, 설비, 소방 등 참여 업체 직원들도 함께 미쳐갔다.  현장은 땀과 고민이 뒤범벅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제주 해양문화의 상징인 어촌민속전시관을 건립하는 과정에 동참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 회상해도 열정적인 회의 그리고 철저하게 시공하려고 애썼던 모습들이 아른거린다.

2005년 5월경에 하루는 고 신철주 군수가 군수실로 부른다. 해녀박물관 현장에 가고 싶다고 한다. 현장에서 보고를 받고 난 후에 소나무를 조경한 것을 보고 "소나무 참 좋다"하며 칭찬을 해준다. 퇴근 시간 무렵에  또 군수실로 부른다. 오늘 직원들 고생하는데 저녁을 하자는 제안이다. 전 직원을 격려해주는 만찬 자리에서 내일 해외 출장 잘 다녀오라고 하면서 격려금까지 주었다. 그게 신 군수와는 마지막이다. 귀국하는 날 한라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외국 해양박물관 벤치마킹을 하고 전시 마무리를 위해 위한 해외 출장이다. 일본에서 토바시에 있는 바다박물관의 수장고를 보고 초라해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였는데 말이다. 역설적으로 일본은 먼저 자료를 수집한 후에 박물관을 짓는데 우리는 먼저 박물관을 만들어 놓고 자료를 수집한다. 그러기 때문에 사진 패널이나 인공적인 모조품만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또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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