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다음달 9일까지 1개월간 4·3 평화 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4·3 71주년 유품 展 '기억의 목소리' 고현주 사진전이 마련됐다.
누구는 아득히 먼 시간이라고, 그 시간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귀를 막았다. 남은 자는 울음과 탄식조차 금기시되었고, 가슴에 한(恨)을 묻으며 71년의 통곡의 세월을 보내었다. 그녀들의 통곡세월을 작은 유물로서나마 기억을 더듬으며 조금씩 말문이 열리고 있다.
하나의 빛이 어둠을 물리치는 법. 현기영 선생 '순이 삼촌'이 나오면서부터 제주의 한과 슬픔으로 얼룩진 4·3 역사가 어둠에서 빛으로 환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가가 4·3 희생자 추념일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되고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로서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금까지 말문을 막았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고현주 사진작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육지에서 활동하다가 고향 제주로 내려왔다.
그녀는 제주도의 역사와 공간, 그리고 이곳 고향 사람들의 생애에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제주의 아픔을 들쳐보게 되었고 그 이야기 작업을 지난 2년 동안 준비해왔다.
20여 명의 유가족들의 유품과, 제주4·3평화재단 수장고의 일부 소장품을 촬영하기도 했다.
출품 속 작품에는 푸른 녹이 슨 부러진 숟가락, 낡은 고무신, 할머니의 물빛 저고리, 관에서 처음 본 어머니의 은반지, 아버지의 젊은 시절 초상화,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빗, 사연 많은 어머니의 재봉틀 등 70년 이상 바스러져가는 4.3유족의 사물들이다. 전시작품과 사진집에 나온 시와, 인터뷰 글은 유가족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채록하며 이뤄졌다고 한다.
제주 4·3의 끝나고 산자가 갖고 있었던 것은 놋쇠 숟가락과 제기. 이는 4·3으로 억울하게 죽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제 등에게 한은 못 풀어주지만, 이날이 오면 쌀밥에 생선국이라도 올리기 위해 보잘 것 없지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들이다. 산자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숟가락이 필요했고, 제사를 지내려면 제기가 있어야 했다. 이런 유품에 남아있는 작은 흔적들이 4·3 희생자들의 원혼과 유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고현주 사진작가가 앵글에 담은 4·3 유품 사진을 통해 그 당시의 풀잎처럼 연약한 우리 어머니들의 잊었던 삶의 이야기들이 사진 속에서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서고 있다.
육지로 끌려갈 때 금방 돌아온다는 형이 대구형무소에서 보내온 엽서 한 장, 빛바랜 증명사진 한 장, 아버지는 4·3으로 희생되어 홀로 남아 살기 위해 뭍으로 나간 18살 앳돼 보이는 소녀의 한을 통해 산자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었다. 당당히 자존심을 세우려는 연약한 소녀의 마음을 생각할 때면 가슴이 쓸어내린다.
개막식에 진행된 토크콘서트에서 고현주 작가가 4·3 유가족을 만나고 촬영하는 과정과 전시이유를 밝혔다. 그녀가 만났던 당시에 비극의 현대사에서 서 있던 제주 어머니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부터였다. 4·3 영령과 그 유족들이 견디어낸, 혹은 아직도 견디고 있을지도 모를, 그 참혹한 공간과 시간. 그것들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은 당시에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당사자들은 사라지고 있지만, 남아있는 유물들이 그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었다.
고현주 작가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소중한 이들, 그리고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을 바라보면서 4·3 유족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기뻐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며 "나 자신도 이번 작업을 통해 4·3에 대해 몰랐던 점들을 많이 배웠고 이번 전시가 나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작가의 대표 이미지가 유족 양남호씨의 어머니가 사용한 숟가락인 이유에 대해서는 "베고 찌르는 서양의 포크와 나이프와 달리 숟가락은 들어 올려서 떠 놓고 나눠준다는 점에서 평화의 이미지를 읽었다"며 "민·관, 좌·우를 떠나서 제주 4·3도 숟가락처럼 평화·인권의 가치가 되길 바란다"고 답변했다.
한편 전시는 다음달 9일까지 열리며 유가족 20여 명의 유품과 유해발굴을 통해 확인된 유물 사진을 촬영한 작품들의 사진과 사연, 그리고 유품들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