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500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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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500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마을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12.02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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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만큼 벅찬 감동이 있는 곳.
함덕해수욕장 동쪽에 있는 서우봉 정상에서 본 북촌리 마을 모습.
함덕해수욕장 동쪽에 있는 서우봉 정상에서 본 북촌리 마을 모습.

제주 곳곳에는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일상의 수고도 덜고 복잡한 생각도 정리하기 위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열심히 달리고 온 인생길, 헤아릴 수 없는 나이테,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자연의 부름 앞에 모든 삶은 흔적을 남긴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의지와 자극이 되어준다. 오랜 믿음이 있는 곳에 특별한 이야기가 전해오는 마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가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공간에 의외의 어떤 장소들이, 이외의 시설들이, 이외의 사람들이 이렇게 있는 것을 여행에서 만났을 때 경이로워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여정의 출발점은 북촌리가 내다보이는 서우봉에서 시작된다. 함덕해수욕장 동쪽에는 서우봉 둘레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무심하고 소박하게 길가에 핀 들꽃을 본다고 발길을 멈추게 한다. 척박한 산비탈을 깎아 한 뼘씩 넓혀간 선조들의 땅은 이제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명소가 됐다. 서우봉 정상에는 북촌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앞으로 다려도도 눈에 들어온다. 북촌 북쪽 400m 거리에 있는 섬으로 물개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달서도라고 한자로 쓴다. 많은 여가 모여 하나의 섬을 이루고 있다. 이 부근에 물고기가 많아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전복, 소라, 해삼, 문어 등과 미역, 우뭇가사리, 해조류 등도 많아 북촌주민들에게는 생활 터전을 주는 다려도는 오랫동안 어업을 위주로 생활해온 주민들에게 풍부한 해산물을 제공해준 보물섬이고 은혜로운 섬이다.

거센 파도를 잠재우는 바다 조업에 최적지인 다려도 모습.
거센 파도를 잠재우는 바다 조업에 최적지인 다려도 모습.

서우봉은 북촌마을의 형성되면서 밭농사를 짓는 생활의 터전이었으며, 수 천구의 선조의 묘가 자리한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며 북촌의 희망봉이다. 북촌의 지형은 하늬바람을 막아주는 서우봉과 북풍의 거센 파도를 잠재우는 다려도가 있어 바다 조업에 최적지일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수산물이 풍부한 수산자원의 보고이다.

제주시 동쪽 함덕 해수욕장을 지나자마자 서우봉을 베게 삼고 앞바다 다려도가 해풍을 막아주는 동네 북촌리는 5000년에서 1만500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며 지금까지 이어오는 마을이다.

고두기 언덕의 신석기시대 바위그늘유적과 '엉물동네' 크라운골프장 안의 신석기시대, 그리고 탐라전기의 유물 등을 고려할 때, 이곳 일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꽤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북촌리 포구 해안 일대는 2000여 전부터 마을이 있었다고 전해오지만, 현재 마을에 관련해서는 조선 시대에 들어서 '윤이촌(尹李村)'이라는 마을 명칭이 말해주듯 공 씨, 이 씨, 윤 씨 등이 이주해와 집단으로 거주했다고 한다. 이는 포구 해안 일대에 마을이 들어섰던 것이 아니고 기존 마을의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조용하고 운치와 멋스러움이 있는 북촌리 유일한 카페 사진.
조용하고 운치와 멋스러움이 있는 북촌리 유일한 카페 사진.

바다로 이어진 마을로 들어와 포구에 닿으니 오래된 2층 건물에서 피아노 건반 소리에 가는 걸음이 멈춘다. 오색빛깔의 슬레이트 지붕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운데 2층 건물은 원래 주택이었는데 리모델링을 하여 피아노 카페로 몇 개월 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사장은 서울에서 도시 생활을 접고 조용히 제주에 살고 싶어 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삼양 해수욕장에서 카페를 하다가 조용하고 운치와 멋스러움이 있어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 집에서는 여러 나라 커피 품종을 들여와 직접 로스팅하여 자신만의 커피 맛을 만들어낸다. 북촌리 유일한 카페로서 주변 분위기에 어우러진 커피 맛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가 있다.

학살이 일어났던 옴팡밭에 현기영의 순이삼촌 문학비 사진.
학살이 일어났던 옴팡밭에 현기영의 순이삼촌 문학비 사진.

북촌리는 일제강점기에 항일 운동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해방 후에는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치조직이 활성화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1947년 8월 13일 경찰관에 대한 폭행 사건과 1948년 6월 16일 우도지서장 납치 살해사건이 북촌리 청년들에 의해 벌어지면서부터 늘 토벌대의 주목을 받았다. 4·3사건의 와중에는 많은 청년이 토벌대의 탄압을 피해 피신하면서 많은 희생자를 냈다. 이런 와중에 4·3 사건 때 군인 한두 명 다쳤다고 마을 사람 모두 불러 모아 무차별 살육을 한 현장이 북촌 초등학교 옆 너븐승이 옴팡밭이다. 몇 년 전까지도 땅을 파면 하얀 백골과 총탄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 학살이 일어났던 옴팡밭에는 현기영의 순이 삼촌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꺾이지 않은 삶의 의지와 그래서 더 아름다운 북촌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만큼 벅찬 감동이 바로 조천 북촌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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