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광이 수려하고 그림 같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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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이 수려하고 그림 같은 마을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12.09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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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백 년간 이어오면서 수많은 삶과 이야기가 있다
납읍리사무소 앞 전경 사진.
납읍리사무소 앞 전경 사진.

겨울에 문턱에 들어선 제주. 제주 섬 전체는 노란 감귤의 익어가는 향이 가득하다. 오랜만에 저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특별한 추억 만들기에 돌입했다. 항공기가 제주국제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비양도 상공을 경유하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마을, 애월읍 납읍리.

이곳은 애월읍 서부 중산간 지역의 중심에 위치하여 동쪽으로는 상가리와 하가리, 북쪽으로는 애월리와 고내리, 서쪽으로는 금성리, 남쪽으로 봉성리와 어음1리, 어음2 등으로 둘러싸인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 경관이 수려하고 나무가 많아, 마을 전체가 마치 그림과 같은 모습으로 평화스러운 곳이 납읍리이다.

여느 제주의 시골 마을처럼 이곳도 들어서자마자 보통 사람 어께 너머만큼 쌓은 돌담 사이로 겨울바람을 받으며 탐스러운 노란 감귤이 익어가고 있다. 온 사방이 노란빛이라 보이는 곳곳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워 누구나 스마트 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었다 하면 프로작가 못지않은 실력을 뽐낼 수 있다. 가족과 함께한 나들이라 가족을 위해 내가 자진해서 앞으로 나서 찍자 나는 완전히 망가지지만, 아이들이 모습은 멋진 모델이 된다. 나의 작은 희생이 가족을 이처럼 작은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다. 가족과의 나들이는 이런 작은 행복을 찾기 위해 떠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차량이 비좁은 마을 길에 들어서자 차를 세우고 걷기로 했다. 예전 사람들이 걷던 그 길을 따라 그분들의 숨결을 느끼며 걷기 시작했다.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꾸며진 마을과 돌담 사이로 보이는 농촌 풍경은 평화로운 가운데 풍요가 넘쳐난다. 걷고 또 걸어도 끝이 안 보이는 정겨운 골목. 이런 곳이 원래 '제주올레'이다. 옛날에는 제주 사람들은 주택을 마련할 때 넓은 큰길(한질)에서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집을 사람 살기에 최고의 주택으로 꼽았었다. 옛날 제주 사람들은 골목을 만들 때는 큰 길에서 일직선으로 올레를 뽑지 않고 약간 휘어서 안을 볼 수 없도록 설계를 했다. 이는 큰 길에 돌아다니는 잡귀나 낯선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주 사람들이 지혜가 숨어있다. 이런 방식을 따르듯 납읍리 골목도 꼬불꼬불 이어진다. 골목 끝에 자리한 집은 옛 정취가 가득하다.

감귤원을 폐원한 자리에 예쁘게 단장한 카페 모습.
감귤원을 폐원한 자리에 예쁘게 단장한 카페 모습.

정신없이 마을 길을 걷다 보니 감귤원을 폐원한 자리에 이국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예쁘게 단장한 카페가 있다.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고  우리는 카페로 들어섰다. 카페는 두 개 동으로 이루어졌다. 한 동은 제주의 옛 집을 그대로 살려 내부만 리모델링하여 찻집을 꾸몄고, 메인은 현대식 건축으로 이국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세련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아이는 즐겨 찾는 메뉴를 선택하고 나는 아메리카노 진한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며 잠식 휴식을 취했다.

납읍리의 지명유래는 마을 선비들이 과거급제가 많아 마을 이름이 과납(科納)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는 마을 출신 중 문무과갑이 연이어 나오자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세인들의 질투로 목사가 마을 이름을 '납읍'으로 바뀌게 했다. 실제로 마을 이름을 과납에서 납읍으로 개칭한 것은 조선 영조 때 제주목사 소두산이 마을 명이 너무 과하다 하여 납읍으로 개칭했다는 기록도 있다.

납읍리 마을 뒷편에 보이는 과오름 모습.
납읍리 마을 뒷편에 보이는 과오름 모습.

납읍리는 풍수지리설이 행하여 지던 시대에는 갖가지 일화도 많았다. 고내봉은 마을로 향하여 서 있으니 신관을 맞이하는 형이요, 과오름은 북쪽을 향하여 돌아서 있기에 무관을 배웅하는 형으로 과오름의 활등이 이어져 어사화를 꽂은 듯하여 과거급제가 연이어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런 연유인지 모르지만 납읍리는 지금도 큰 인물이 많이 나오는 마을로 유명하다.

납읍의 설촌의 역사는 약 700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서기 1300년경으로 고려 충렬왕 때쯤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납읍은 많은 부침 속에 이어왔다. 특히, 제주 4·3은 단지 중산간 마을이라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숱한 가옥 파괴와 마을 전체의 소개, 뒤이은 재건작업, 그리고 억울한 인명손실 등 700년 설촌 약사 이래 최악의 참극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은 고향을 등지고 멀리 타향이나 도시로 떠나는 이산의 대열이 줄을 이었다.

이 땅의 자연은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 700 년간 이어온 납읍리에는 수많은 삶과 이야기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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