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한라산 공비소탕작전 투입 전경…향후 생계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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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한라산 공비소탕작전 투입 전경…향후 생계 '부각'
  • 김용덕 기자
  • 승인 2020.01.05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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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지리에 밝은 전경 활용 '한라산 안내'가 시초
당시 제주경찰국 공보주임 이동규씨 民警和合 차원 '구상'
제주관광의 태동을 알린 한라산 안내사업. 당시 이 사업을 구상한 당시 제주도경찰국 공보주임이었던 이동규씨는 한라산 공비소탕작전에 투입해 이를 성공적으로 이끈 전경들이 실직당할 것을 우려. 이들을 활용한 한라산 안내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사진은 지금의 한라산 전경 모습.
제주관광의 태동을 알린 한라산 안내사업. 당시 이 사업을 구상한 당시 제주도경찰국 공보주임이었던 이동규씨는 한라산 공비소탕작전에 투입해 이를 성공적으로 이끈 전경들이 실직당할 것을 우려. 이들을 활용한 한라산 안내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사진은 지금의 한라산 전경 모습.

제주의 관광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한국전쟁 후부터다. 암울한 시절, 제주가 살길은 관광밖에 없다는 한 경찰관의 구상에서 비롯됐다. 당시 한라산 공비소탕작전에 투입됐던 수많은 전투경찰들이 작전이 끝나면 실직당할 것을 우려, 이들을 한라산 안내 요원으로 활용해 생계와 직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주관광안내소'를 차린 게 제주관광의 시초였다. 제주관광의 창시자였던 해당 경찰관이었던 이동규씨는 작고했다. 그러나 제주관광은 발전을 거듭,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 제주관광의 태동과 발전상 등 역사를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다. 속담이 말해주듯 척박한 토질과 기후로 우리나라에서조차 천대받아왔던 제주를 지키기 위해 제주先民들은 격랑의 세월과 싸워왔다. 그 결과 관광제주로서의 웅비(雄飛)와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놓았다.

이제 관광인구의 저변 확대와 교통・통신의 발달로 관광제주는 1991년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노태우 태통령의 제주정상회담 이후 '신비의 섬, 환상의 섬'이자 신혼여행객들의 가장 가고 싶은 섬으로 크게 부각되면서 유명세를 크게 떨치며 발전을 거듭, 세계관광무대에 우뚝 섰다.

그렇다면 제주관광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빛을 보게 됐을까. 한국전쟁이후 제주에 올 수 있는 방법은 배편밖에 없었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도 극히 일부였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고위직 외국인과 출장 공무원이나 제주에 있는 훈련소에 있는 아들을 찾아오는 면회객이 전부였다.

당시 제주에서 관광이란 단어는 한글자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배편을 이용, 제주를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주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보고 즐기는 것을 유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일단 관광은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 같은 관광의 무개념속에 일단 제주로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짧은 시간에 제주를 보게 하자는 생각을 한 것은 1955년 당시 제주경찰관서에 몸담았던 이동규(李東圭, 당시 제주도관광안내소, 외방여행사 대표)씨였다.

이씨는 당시 한라산 공비소탕작전에 투입됐던 전투경찰을 대상으로 작전이 끝나면 모두 실직당하게 될 전경들의 향후 생계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한라산 지리에 밝은 전경을 활용, 한라산을 안내토록 하는 것이었다. 전경을 활용한 한라산 안내도 그때 뿐이었다.

당시 이씨는 제주도경찰국 공보주임이었다. 공보주임으로 재직할 당시 한라산 공비소탕작전도 성공리에 끝나게 될 즈음, 공비소탕작전으로 '한라산에 봄이 온다'는 내용이 도민에게 알려질 때였다. 이씨는 당시 李慶進 15대 경찰국장에게 "한라산 공비소탕작전이 성공리에 끝나니 소탕작전에 투입됐던 전경들을 활용해 한라산을 안내하는 관광사업을 벌일 경우 民警화합은 물론 도민 전체가 잘 살 수 있는 길이 트일 것"이라고 제의했다.

당시 이씨가 구상한 한라산 안내의 단순한 관광사업은 실직당할 위기에 놓여있던 전경들의 생활수단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법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시 관광이라는 영어가 낯설고 집밖을 떠나 외유하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던 때다. 이때 이씨가 구상한 제주관광은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었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씨에 의해 상상조차 못했던 한라산 안내라는 '제주관광의 싹'이 틀 수 있었던 것이다. 가히 제주관광의 창시자이자 제주관광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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