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공예 '장공익' 명장이 평생을 작품 활동했던 1만여 평 부지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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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예 '장공익' 명장이 평생을 작품 활동했던 1만여 평 부지에 설립
  • 한기완 기자
  • 승인 2020.01.12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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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방문한 각국의 국가원수들이 들리는 필수코스
제주의 전설을 돌로 표현한 설문대할망 모습.
제주의 전설을 돌로 표현한 설문대할망 모습.

1940년대 장난감이라는 단어도 생소했던 시절. 물에 뜨는 돌(속돌)로 돌하르방을 만들어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면서부터 돌챙이(석공)가 된 한 소년이 있었다. 눈만 뜨면 돌밭에 있었고 돌만 생각하고 돌에 미친 그를 국가에서 그의 실력을 인정하여 대한민국 석공예 장인으로 칭호를 받은 이가 바로 돌챙이 소년이었던 '명장 장공익' 선생이다.

그는 돌이 좋아 힘든 것도 잊고 오로지 평생 돌을 깎고 다듬으면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만든 돌 놀이터 돌 속에 묻혔다.

명장 장공익은 해병 22기로 만 5년을 근무하고 1957년 군대를 전역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석공예를 무기로 관광기념품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에 제주는 관광산업이 태동할 시점에 관광기념품도 출시되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 제작할 수 있는 기념품은 모조품만이 난무했다. 남들이 기념품을 모방하기에 모방 못하는 돌하르방 기념품을 장공익은 생각했다. 가난한 시절 고향 제주 한림은 사방에 널려있는 것은 돌뿐. 속돌로 석공예를 만들었던 기억으로 그는 돌하르방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열세 살 때 학교를 오가면서 속돌로 조각했던 것을 기억하며 돌하르방을 만들어 전시하자 관광객들에게 호응이 좋았다. 주문량도 많아지고 돌하르방 석공예를 배우고자 장인 곁으로 제자들도 몰려들어 무려 60여 명을 거느리게 되었다. 제자들은 스승 곁을 떠나 제주지역 곳곳에서 석공예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선생은 기뻐했다. 그런 선생도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지나 2018년 9월, 그 많은 작품을 만들던 그 자리에 잠이 들었다. 선생님이 떠난 자리에 석공예 장공익 명장이 평생을 작품 활동했던 1만여 평 부지는 '금능 석물원'으로 새롭게 단장되어 그분이 숨결이 흐르고 있다. 

돌·바람·여자가 많다고 해서 삼다도라 부르는 제주에는 돌을 외부로 반출할 수 없지만, 가공된 석조물은 가능하다. 돌하르방은 제주를 찾은 여행객이면 기념품으로 들고 갈 정도로 지금도 제주의 대표 관광기념품이다. 그렇게 친숙한 돌하르방과 석물조각품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금능석물원이다.

제주 사람들의 삶을 돌로 표현한 제주 초가집 모습.
제주 사람들의 삶을 돌로 표현한 제주 초가집 모습.

석물원에는 약 3500여점이 석공예 작품이 어우러져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돌로 표현한 1만평 부지에 약 40여 년 동안 돌하르방을 제작한 장공익 명장이 제주생활의 모습을 돌로 표현한 공원이다. 

금능석물원은 제주를 방문한 각국의 국가원수들이 들리는 필수코스가 되고 있다. 소련의 고르바초프, 클린턴, 나까소네 수상, 중국의 장쩌민 국가 주석 등이 이곳을 들렀고 50여 개 나라 귀빈들에게 제주를 상징하는 돌하르방을 선물용으로 제작하였다.

금능석물원의 석불 조각품이 많이 전시되어 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불교적인 색채이다. 이는 장공익 선생이 부처님에 의지하여 힘든 삶을 이겨낸 듯 그의 사상적 배경을 알 수 있는 듯하고 이곳을 작업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온통 사방이 좋은 조각을 할 수 있는 돌이 풍부해서이다.

석물원의 시작인 정녀굴 안에 부처님 모습 .
석물원의 시작인 정녀굴 안에 부처님 모습 .

석물원의 시작은 정녀굴에서 시작된다. 굴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서자마자 바위틈에서 뿜어 나오는 물소리가 산란했던 마음을 하나로 모이게 한다. 시원한 물소리를 뒤로하고 동굴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공기가 포근하고 긴장된 마음이 풀리게 된다. 저 멀리 희미한 촛불 사이로 부처님이 모습을 드러낸다.

석굴에 모셔있는 부처님 역시, 장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듯 세심함과 풍만함, 그리고 엄숙함이 느껴진다. 금능석물원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는 불교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석불들이 있는데, 수십 년 동안 이곳을 지켜온 명장 장공익 선생의 작품이라고 한다.

입구에서 시작하여 부부인어상, 자모상, 우석동상, 일붕호국원불, 제주초가집, 해녀군상, 통시, 저승 가는 길, 돌종, 코부자상, 고수목마상, 천태만상, 4·3에 사라진 한산 이왓동네,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상, 할망당, 부부일체상, 애기구덕, 표석, 제주현존 하르방 45기, 구자동상, 자화상, 휼민상 등 제주의 전설과 제주 사람들의 삶을 돌로 표현하고 있다.

작지만 정감 있는 그 속에 아름다움을 갖고 있고 또 자연의 악조건을 이기고 변화시킨 장인 장공익 선생이 만든 동산에서 제주의 얼굴을 찾아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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