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교통 외 1949년 KNA 스티슨기 서울~광주~제주 취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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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교통 외 1949년 KNA 스티슨기 서울~광주~제주 취항
  • 김용덕 기자
  • 승인 2020.02.1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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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부산 금화호, 해산호, 오건호, 황영호
제주~목포 충광호, 남신호, 경영호, 신광호
부산~제주~목포 제주호, 광성호, 황영호
1949년 2월 1일 KNA 스티슨기 서울~광주~제주 취항
1959년 7월 20일 취항한 제주호는 제주와 여수 간을 드나들던 여객선이었다. 그해 12월 11일 제주호는 제주-부산 간 정식취항 인가를 받아 이 항로에서 폐선 직전까지 운항된다.
1959년 7월 20일 취항한 제주호는 제주와 여수 간을 드나들던 여객선이었다. 그해 12월 11일 제주호는 제주-부산 간 정식취항 인가를 받아 이 항로에서 폐선 직전까지 운항된다.

일제시대 일본인 소유 선박들은 1945년 8월 15일 해방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 때부터 제주를 잇는 연륙교통수단은 내국인들의 소형선박에 의해 그 명백을 유지하게 됐다.

그 당시 제주~부산은 금화호, 오조호, 황영호가, 제주~목포는 충광호, 남신호, 경영호, 신광호가 있었다.

이러한 사정은 6・25동란이 나기전까지 이어졌다. 1951년 제주 관광의 주요 수단의 하나였던 해상 삼각항로가 개설되면서 광성호, 제주호, 황영호 등 3척이 운항됐다.

그러나 제주해협의 높은 파도와 기상악화로 휴항하는 날이 많았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도 기껏해야 당시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에 면회오는 공직자들이 전부였다. 일반인들의 관광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기였다.

제주와 서울 간을 운항하였던 KNA기의 모습이다. KNA기는 1958년 3월 13일부터 정기운항을 개시하여 1962년 11월 30일 폐쇄됐다. 우측에 보이는 것이 당시 공항 관제탑.
제주와 서울 간을 운항하였던 KNA기의 모습이다. KNA기는 1958년 3월 13일부터 정기운항을 개시하여 1962년 11월 30일 폐쇄됐다. 우측에 보이는 것이 당시 공항 관제탑.

해상교통 말고 제주상공에 여객기가 처음 운항된 것은 대한국제항공사가 대한국민항공사(KNA)로 개칭된 이후였다. KNA는 1948년 정부로부터 정기 여객선 노선면허를 받은 다음해인 1949년 2월 1일 서울~광주~제주를 비롯 서울~강릉 등 2개 노선에 4인승 프로펠러기인 스티슨기였다.(한국항공우주과학기술사 기록 참조)

이 스티슨기는 그나마 6・25동란으로 군에 징발, 제주와 타시도를 잇는 항공운항운 두절됐다. 그 후 1951년 9월 서울~제주를 비롯 4개 항로가 재개됐다. 1953년 3월에는 부산~제주 노선에도 주 2회 정기항공편이 운항됐다.

그러나 비행기가 부족한데다 기대했던 만큼의 승객확보가 이뤄지지 않아 KNA는 심한 경영압박을 이기지 못해 1951년 이후 2년만에 운항을 중단했다.

제주연륙교통수단이 불편했던 50년대 초반 제주관광은 걸음마조차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1955년 9월 1일 제주읍이 시(市)로 승격, 시정업무를 본격 추진, 관광 제주로 발전할 수 있는 행정기반이 다져지게 됐다. 특히 같은 해 무릉국민학교생들이 우연히 협재굴(挾才窟)을 발견한데다 이호해수욕장이 개장되는 등 관광제주의 자원으로 부상, 관광제주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1955년 4월 10일 제주시 칠성로에 간판을 내건 '제주관광안내소'는 도민 인식부족과 전국적으로 혼미했던 정치・사회적 분위기로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문은 열었으나 손님이 하나도 없는 '개점휴업'상태였다.

특히 제주도에서 관광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던 약속도 도의회에서 "도민이 굶어 죽어가는 판에 무슨 관광사업이냐"며 예산을 전액 삭각해 버렸다.

그 시기 제주북국민학교에서 '전국교육자대회'가 열렸다. 이 소식을 접한 당시 이동규는 이들을 대상으로 제주관광선전게 및 수용태세 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이 때 이동규가 제작한 최초의 프린트판 관광안내 팸플릿이 선보이게 된다.

제주관광안내소의 홍보 선전 글과 영주십경, 한라산 안내도가 자세히 그려진 이 안내 책자에는 제주를 찾은 교육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동규는 흑산호 담배파이프와 펜대 가공 공장을 찾아가 위탁판매형식으로 다향의 토산품을 구입, 사무실에 진열해 놓는다.

당시 흑산호 담배 파이프는 특히해 이들에게 구매욕을 일으켜 꽤 많이 팔리기도 했다.

제주인들에게 '무남' '무낭'으로 더 잘 알려진 흑산호 담배 파이프와 펜대, 브로치 등 엉성한 토산품이 상점마다 바닥이 날 정도로 팔려 나갔다. 이는 관광산업에 막연할 기대를 걸었던 관광사업자들에게는 희망의 끈이었다.

특히 종려(琮梠), 나도풍란(風蘭), 문주란(文珠蘭) 등 나무와 꽃을 이용한 화분 등이 상품화돼 최초로 판매됐다.

당시 나도풍란은 선물용으로, 문주란은 장식용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며 토산품 판매가 활기, 제주관광의 새로운 활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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