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농사를 위해 몸가짐을 단정히 하여 정성을 올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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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농사를 위해 몸가짐을 단정히 하여 정성을 올리는 날
  • 한기완 기자
  • 승인 2020.02.1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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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세시풍속 입춘 '새철 드는 날'에는 남녀노소 집 밖 출입이 조심스러웠다.

제주에서 '입춘'은 '새철 드는 날'이라 하여 새로운 절기 즉 봄(春)이 시작되는 날을 뜻한다. 음력 1월, 양력 2월 4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15°에 와 있을 때를 말한다. 24절기 중 첫째가 입춘(立春)이다. 제주의 신구간은 묵은해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과 새해의 첫 절기인 입춘 사이에 있다. 신구간은 지상에는 귀신이 없는 틈을 타서 집안의 모든 일, 가옥 울타리, 부엌, 변소, 외양간 등을 손질할 곳은 으레 택일하지 않고도 거치 장한 일들을 마무리하여 새해를 준비하는 단계라고 하면 입춘은 1년의 첫날이라는 관념이 강했다. 새 철이 들기 전에 이웃에서 빌려온 물건이나 꾼 돈 등을 모두 정리하여 묵은해의 일들을 완전히 말끔히 청산하고 새로운 마음을 안고 새해를 불러오자는 의미가 있다. 이날은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날인만큼 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집안에서 조용히 온 집안 식구들은 모두 모여 경건하고 엄숙하게 하루를 보냈다. 이는 제주 사람들이 삶의 지혜가 엿보인다.

한양 궁중에서는 입춘 하례를 지냈고 함경도 목우(木牛) 놀이 등 지방에서도 여러 의례가 잇따랐다. 집마다 기복 행사로 입춘축(立春祝), 입춘서(立春書), 입춘첩(立春帖) 등으로 불리는 글씨를 써서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일도 했다.

제주에도 새철 드는 날인 입춘에는 육지부처럼 집집마다 대문에 입춘 축사를 써 붙인다. 특히 제주에는 1만8000 여신이 살고 있듯이 지게문 기둥, 고팡문뿐만 아니라 심지어 마구간 기둥에도 입춘문을 붙이고 난후 집집마다 작게나마 나름대로 입춘굿을 하고 관아에서는 큰 굿판이 열린다.

제주의 대표적 입춘굿은 농경 의례에 속하는 입춘날 굿놀이로 탐라의 왕이 몸소 백성들 앞에서 밭을 갈아 풍년을 기원하던 풍속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제주 심방(무당)들이 관아의 중심지로 한데 모여들어 제주 사람들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기원해오다가 일제 강점기 때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1999년 재현돼 해마다 열리고 있다. 그러나 올해로 22회째를 맞는 입춘굿 놀이가 중단됐다. 민·관 합동 기원 놀이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입춘굿 축제가 중국 우한에서부터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전면 취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입춘맞이'로 시작해 '낭쉐코사', '거리굿', '열림굿', '입춘굿' 등으로 이어져 국태민안을 빌고 건강과 행복을 소망바라는 올해 입춘굿은 내년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특히 제주의 세시풍속인 입춘 날에는 여자들은 이날만큼은 외출을 철저히 막는 풍속이 있었다. 새철 드는 날에 남의 집에 찾아가면 그 집에는 그해의 농사에 잡초가 무성하게 된다는 통설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날만큼은 여인들의 몸가짐에 더욱 조심하기 마련이다. 어느 집에는 그 해 밭농사에 잡초가 무성했다면 "금년 새철 드는 날에 아무 예편(여자)이 왔다 갔는데 그 예편이 알 짓은 예편이었는가 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알 짓은'은 제주의 사투리로 사람의 생식기 주위에 난 털인 '음모(陰毛)'를 말한다. 입춘에는 여인들의 몸가짐에 조심했지만, 음모(陰毛)가 없는 여인이면 상관이 없다(어린아이)는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사람이 어른치고 음모가 없는 여인도 드물 것이다. 또한 수염이 있는 남자도 남이 집에 찾아가거나 털 짐승이 집안에 날아 들어와도 그 집에 "그 해 용시(농사)에 검질(잡초) 짓나고(무성하게) 한다. 또한 새철 드는 날 반몰 치마 입은 예편(여자)을 보면 액운이 닥친다고 했으니 이날만큼은 여자들은 옷차림에도 몹시 마음을 써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새해 농사를 준비하는 남자들이 새해 첫 절기부터 여자를 보면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한 해 농사를 준비하기 위한 몸가짐을 단정히 해 정성을 올리자는 의미가 더 클 듯싶다. 또한 이날 상제(상주(喪主))를 만나면 그해 운이 대통(大通)한다고 하여 상주를 만나게 되면 사람마다 마음 흐뭇하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새철 드는 날에는 돈을 쓰게 되면 1년 내내 돈 쓸 일만 일어난다고 해서 돈 쓰는 일을 삼간다. 지금도 입춘날에는 남의 집에 가는 일이 없고, 돈 쓰는 일을 삼가는 풍습이 있다. 이처럼 제주의 세시풍속 입춘에도 제주 사람들의 한해 농사를 통해 풍요를 누리고자 하는 정성의 지혜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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