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표지는 해정 박태준이 그린 '해녀도' 그림 뒷면에는 '觀光團體 特別歡迎' 표어와 전화번호, 주소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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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는 해정 박태준이 그린 '해녀도' 그림 뒷면에는 '觀光團體 特別歡迎' 표어와 전화번호, 주소 기재
  • 김용덕 기자
  • 승인 2020.02.15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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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33페이지…한라산 전경・영주(瀛洲)10경・천연기념물・해녀의 잠수 풍경과 애기구덕 담아, 동식물의 종류와 특산물도 소개.

제주북국민학교에서 '전국교육자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당시 이동규는 이들을 대상으로 제주관광선전 및 수용태세 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이 때 이동규가 제작한 최초의 프린트판 관광안내 팸플릿이 선보이게 된다.

제주관광안내소의 홍보 선전 글과 영주10경, 한라산 안내도가 자세히 그려진 이 안내 책자에는 제주를 찾은 교육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동규는 흑산호 담배파이프와 펜대 가공 공장을 찾아가 위탁판매형식으로 다향의 토산품을 구입, 사무실에 진열해 놓는다.
당시 흑산호 담배 파이프는 특이해 이들에게 구매욕을 일으켜 꽤 많이 팔리기도 했다.

제주인들에게 '무남' '무낭'으로 더 잘 알려진 흑산호 담배 파이프와 펜대, 브로치 등 엉성한 토산품이 상점마다 바닥이 날 정도로 팔려 나갔다. 이는 관광산업에 막연할 기대를 걸었던 관광사업자들에게는 희망의 끈이었다.

특히 종려(琮梠), 나도풍란(風蘭), 문주란(文珠蘭) 등 나무와 꽃을 이용한 화분 등이 상품화, 최초로 판매됐다.

당시 나도풍란은 선물용으로, 문주란은 장식용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토산품 판매가 활기를 따면서 제주관광의 새로운 활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됐다.

토산품 판매 등 관광 대외홍보가 제주관광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임을 깨우쳐준 시기, 제1회 민요방송콩쿠르대회에서 제주관광안내소 이동규가 작사, 제주여고 김국배(金國培) 음악 선생이 편곡, 제주여고 합창단이 부른 '오돌또기'와 '이야홍' 노래가 장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이는 라디오 방송을 타면서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퍼지게 된다.

이를 통해 전국 계 모임 등을 통해 소수지만 몇 명씩 제주를 찾게 된다.

그러나 이들에게 무언가 구체적으로 관광제주를 소개하는 안내 책자가 없었다.

단순한 소개가 아닌 아름다운 제주의 고장과 부지런히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유명관광지 및 명승지 등을 담아내는 안내책자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당시 제주관광안내소 이동규는 해정(海丁) 박태준(朴泰俊)이 그린 안내 표지와 제주시가지 지도, 제주도(濟州道) 지도를 담은 안내책자를 펴냈다.

이 때가 1956년 초. 한마디로 제주관광  및 선전・홍보사업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

당시 초간물은 안타깝게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1958년 제4판 간행물인 제주도관광안내서(濟州道觀光案內書)는 다음과 같이 엮어져 있는 것이 보존돼 있다.

안내서 겉 표지는 해정 박태준이 그린 해녀도가 그려져 있다. 뒷면에는 '어서오십시오! 아름다운 濟州道를 즐겁게 觀光하십시요! 觀光團體 特別歡迎!'이라는 표어와 함께 사업 종목 및 전화번호, 주소 등이 명확히 표기돼 있다.

당시 이 안내서에는 성산일출봉 등 도내 유명 관광지의 흑백 사진과 사진 설명, 천연 기념물, 민요, 민속놀이, 방언(제주 사투리) 해설, 속담풀이, 한라산 영실의 오백장군, 설문대 할망, 뱀당, 산방산 등 예로부터 구전돼 내려오는 제주 특유의 전설 등을 담아 활판 인쇄로 만들어 졌다.

모두 33페이지로 엮어진 이 안내 책자에는 한라산 전경을 비롯 '제주의 쌍돗대'라 일컬어 졌던 해녀의 잠수 풍경과 애기구덕 등을 카메라로 찍어 책장마다 끼워놓은 초보적 인쇄물이었다.

특히 영주10경, 천연기념물 소재지와 동식물의 종류, 농특산물을 자세히 소개했다.

여기에다 한라산 등반행정(行程)과 제주시를 중심으로 동서회선을 운행하는 버스노선과 시간표, 제주의 상설시장 및 전통 오일시장 등을 담았다.

이 밖에 제주~목포, 제주~부산, 제주~추자도를 잇는 정기 해상교통편과 인천, 마산. 여수를 운항하는 부정기 운항편, 몇 안되는 항공기편을 소개하면서 제주로 오는 최단축 여행 일정표까지 그려 놓았다.

여기에다 당시 행정 구획표와 인구 조사표까지 실었다.

당시 제주시 인구는 6만8090명이었다. 남제주군 인구는 10만8435명, 북제주군 인구 10만5153명으로 제주시 인구가 훨씬 적었다. 참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대목이다.

제주관광안내서에 실은 내용을 보면 지금의 관광안내팸플릿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이동규는 제주관광의 앞을 내다본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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