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는 섬을 살아야 했던 제주인의 염원 '영등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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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타는 섬을 살아야 했던 제주인의 염원 '영등신앙'
  • 한기완 기자
  • 승인 2020.02.23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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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인정한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칠머리 당굿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칠머리 당굿 공연 모습.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칠머리 당굿 공연 모습.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칠머리 당굿 공연 모습.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칠머리 당굿 공연 모습.

음력 2월 초하루의 제주는 갑자기 추워진다. 그날은 한림읍 귀덕리 복덕개로 영등할망이 제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영등신은 바람의 신으로 지독한 혹한의 꽃샘추위를 가지고 온다. 영등할망이 오는 제주의 음력 2월은 그래서 매우 춥다. 날씨가 좋은 해는 영등할망이 사이좋은 딸과 함께 왔고, 너무 추우면 사이 나쁜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 궂은 날씨가 이어진다고 한다. 그해 날씨로 영등할망이 매년 올 때마다 옷차림을 알 수 있다. 비옷을 입고 오면 비가 오고, 두터운 솜옷을 입고 오면 눈이 많다. 그리고 차림이 허술하면 날씨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의 영등달은 날씨도 춥지만, 집마다 되도록 빨래를 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 이는 이때가 유독 습기가 많아 빨래가 마르지 않아 구더기가 괸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제주 사람들이 자연을 읽고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엿볼 수가 있다. 그리고 이날부터 보름 동안 제주 곳곳에는 해안마을을 중심으로 영등굿이 시작된다.

영등할망에 대한 전해오는 전설이 많다. 옛날에 영등할망이 제주 어부의 배가 폭풍을 만나 외눈박이 거인 섬으로 들어가는 것을 구해줬다. 이 일로 할망은 외눈박이 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온몸이 찢겨 머리는 소섬에, 사지는 한림 한수리에, 몸통은 성산까지 밀려오게 되어서, 그때부터 영등할망을 신으로 모시며 굿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옛날 한 포목장사꾼이 제주도로 들어오다가 비양도 근처에서 태풍을 만나 죽었는데, 그 시체가 조각나 머리는 협재, 몸통은 명월, 손발은 고내와 애월에 떠밀려와 영등신이 되었다고도 한다.

해안마을을 중심으로 영등굿하는 모습.
해안마을을 중심으로 영등굿하는 모습.

영등할망과 영등굿은 거친 바다를 접해서 생활하고 있는 제주 사람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세시풍습 중에 하나다. 음력 2월 초하루에 복덕개를 통해 들어와 보름간 제주의 바다와 뭍에 씨를 뿌리고 우도를 통해서 나간다는 영등할망은 영등하루방, 영등대왕, 영등별감, 영등좌수, 영등호장, 영등우장 등의 여러 식솔을 데리고 들어온다. 이날을 기하여 보름 동안 제주도 곳곳에는 영등굿이 열린다. 이 굿은 인간들을 향한 애정이 유달리 강했던 영등대왕, 영등하루방, 영등할망에 대한 제의이다. 해산물과 곡식 등 바다나 육지의 산물의 풍요로움을 가져온다는 영등대왕은 음력 2월 1일 제주도 북서쪽 해변마을 앞바다로 내도하여 도내 전역을 돌아다니다가 보름만인 2월 15일에 섬 동쪽 우도를 거쳐 제주를 떠난다고 이곳 사람들은 믿어왔다.

제주 사람들은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내방한 동안에 정성을 다해 영등굿을 올린다. 제주도의 영등제는 영등신을 대상으로 하는 제주도 지방의 당굿을 말한다. 12개의 막대기를 세우고 연등신을 맞아 제사를 지낸다.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막대기에 비단으로 마령을 꾸며 놓고 약마희를 한다. 연등제 동안 어부나 해녀들은 바다에 나가지 않는다. 이월 초하루에는 영등신을 맞이하는 영등환영제를 시작으로 열흘이 지나 보름이 될 때까지는 순망(旬望) 사이에 마을마다 영등송별제를 지낸다.

특히 영등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 신앙과 민속 신앙이 500년 이상을 이어오면서 세계가 인정한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칠머리 당굿이 있다.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을 칠머리당이라 한다. 이는 건입동 주민들이 마을의 수호신인 본향당신을 모시고 마을굿(당굿)이며 영등굿을 지낸다. 1980년 11월 17일 국가무형문화재 71호로 지정되어 세계가 인정했다. 

제주칠머리당굿에는 영등신에 대한 제주 특유의 해녀 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 굿이기도 하다. 제주도, 남해, 영남지역의 설화나 전설로 전해지면서 바닷가에서 바다의 평온과 풍어 그리고 바다에서 많은 수확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음력 2월에 열리는 제사 의식인 제주도 칠머리당 영등굿은 건입동에 있는 칠머리당에서 개최하는 이 섬의 대표적인 풍어제이다. 마을마다 무당들이 바람의 신인 영등 할망과 용왕, 산신에게 바치는 일련의 여러 의식을 주관한다. 영등 환영 의식은 신을 불러 풍어를 기원하고 조상신에게 바치는 3장의 연극을 포함한다. 마지막 영등 작별 의식은 술과 밥, 떡을 대접하고, 용왕을 맞이하는 의식으로 대단위 막을 내린다. 꽃샘추위가 오는 것을 제주에서는 '영등할망이 왔다'고 표현할 만큼, 영등신앙에는 계절 따라 바람 타는 섬을 살아야 했던 제주인의 염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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