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을 따라 멋진 해안도로가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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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을 따라 멋진 해안도로가 있는 마을
  • 한기완 기자
  • 승인 2020.03.3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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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마을 북쪽에 있는 토산봉 모습.

제주가 '코로나19' 청정지역이 됐는가 싶더니 다시 확진자가 다녀가 비상이 걸렸다.

유럽발 '코로나19'다. 지난달 7일부터 3월 17일까지 스페인 마드리드 체류 후 지난 19일 입도한 20대 여성과 그의 동행자를 대상으로 검체검사한 결과 지난 24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들이 다녀온 스페인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 현재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국가다. 스페인은 23일(현지 시각) 기준 확진자는 3만3089명, 사망자는 2207명에 달한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코로나19' 확산이 심한 나라다.

우리 제주도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들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기전만  하더라도 제주지역 ‘코로나19’ 확진자 4명은 23일 완치돼 일상으로 돌아간 A씨를 비롯 지난 7일 두 번째 확진자를 시작으로 15일 세 번째 확진자, 21일 네 번째 확진자가 차례로 모두 퇴원, '코로나19' 확진자 ZERO의 섬이 됐다.

제주도가 추구해 온 '코로나19' 청정지역이 돼 다행이라고 여긴지 하루만이다.

제주지역은 첫 번째 '코로나19' 확진자인 해군 병사 A씨(22)가 치료 32일만에 퇴원하면서 제주지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없게 된지 하루만에 다시 확진자가 다녀가면서 다시 비상이 걸린 것이다.

제주대학교병원은 지난 23일 오후 병원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주지역 첫 번째 확진자인 해군 병사 A씨가 '코로나19' 검사 결과 2회 연속 음성이 확인돼 격리해제했다고 밝힌바 있다. 제주지역 첫 확진자이자 국내 군인으로서 첫 감염자이기도 한 A씨는 퇴원 후 소속 부대로 복귀했다.

이에 따라 제주지역 '코로나19' 확진자 4명은 지난 23일 완치돼 일상으로 돌아간 A씨를 비롯 지난 7일 두 번째 확진자를 시작으로 15일 세 번째 확진자, 21일 네 번째 확진자가 차례로 모두 퇴원, '코로나19' 확진자 ZERO의 섬이 됐다.

제주도가 추구해 온 '코로나19' 청정지역이 돼 도민 모두 기뻐했지만 하루만에 이게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도민과 행정당국, 의료진 모두 슬기롭게 대처하면서 지역 내 '코로나19' 감염과 원내 감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주도민 모두 슬기롭게 대처하면서 경제살리기에 주력해야 할 때로 제주도는 밝혔었다.

지난해 중국 우한발 '코로나19'로 중국인 입국 금지조치에 이어 지금은 유럽이 '코로나19' 대확산으로 문제다. 이런 시점에 스페인 체류 후 제주도 입도한 내국인이 '코로나19'검사로 지난 24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마디로 해외 유입 환자다. 대구 경북 환자는 줄고 있다 하지만 해외 유입환자는 늘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이에 따라 모든 해외 입국자에 대해 특별입국절차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유입환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나라 '코로나19' 확진자는 25일 0시 기준 9137명으로 곧 1만명선에 가까워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도 126명으로 늘었다.

토산마을 전경.
토산마을 전경.
토산마을 안 모습.
토산마을 안 모습.

표선 토산 2리는 해안선을 따라 멋진 해안도로가 있는 마을이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마을 전체가 해안에서 500m 이내 위치하여 마을 전경이 소박하고 동화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아름다움이 넘쳐난다. 이곳은 서귀포시 동남부에 있는 해안마을로 동쪽으로는 세화 2리와 서쪽으로는 남원읍의 경계인 송천과 마주하고 있다.

마을 북쪽에 있는 토산봉이 바람막이 역할을 하여 주변 지역에 비해 뚜렷한 사계절과 온난한 기후, 청정한 환경 속에 일조량이 좋아 표선면에서 가장 먼저 감귤 재배를 시작하여 이웃 마을로 보급할 정도로 표선일대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광산 김씨가 토산 1리에서 이주하여 토산 2리가 설촌 되었다. 지금부터 약 1000년 전 '토산봉' 서쪽에 탐라 시조의 하나인 제주 부씨(夫氏)가 이주한 것이 설촌의 시초인데 고려조 충렬왕 26년(서기 1300년) 무렵에 제주도에 동서 도현제가 실시될 당시 '절려왓'에 행정관서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번창하였는데 그곳이 이 마을 설촌 터가 되었다. 마을 이름을 처음에는 '토산리(土山里)'라고 했다가 그 후 광산김씨가 '고성리'에서 경주 김씨가 '의귀리'에서 이주하여 큰 마을을 이루니 약 150여 년 전에 풍수지리설에 의거, 이 지역의 지형지세가 옥토망월(玉兎望月)이라 하여 '토산리(兎山里)'로 바꿔 부르게 되었고 지금의 '토산 1리' 전신이다.

'토산 2리'는 약 500년 전에 순흥 안씨가 '가시리'에서, 광산김씨가 '토산 1리'에서 이주한 게 시초가 되어 많은 이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뤘다. 서기 1943년 일제강점기 시절에 행정구역을 재편하면서 '토산 1구', '토산 2구'로 분리되었고 1948년에 행정리 '토산 1리' '토산 2리'로 바꾼 것이 지금에 이르는데 지역주민들은 '알토산' '웃토산' 등으로 부른다.

토산 2리 사무소 뒤쪽으로 토산당지(兔山當地)가 있다. 예로부터 제주에는 뱀과 관련된 신앙이 많이 내려온다. 김녕에는 김녕사굴과 관련된 뱀과의 전설이 내려오듯이 이곳 토산에도 뱀 신앙이 전해온다. 조선조 임진왜란 이 한창일 때 왜군 3명이 식수를 구하기 위해 이곳 사만군수(속칭: 흘래물과, 울리수, 토산 송천교 밑 샘물)에서 마을 처녀가 빨래하고 있는 것을 습격하여 겁탈한 끝에 처녀 3명은 그 자리에서 기절 사망하고 그 뒤 그녀들의 영혼을 모신 것이 뱀으로 화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제단은 없어져도 당토(堂土)만은 남아 있는데 당머리동에 당동쪽은 당골동네라고 부른다고 한다.

토산 당지에서 시작된 뱀과 관련된 전설은 백목사와 토산당, 토산 당팟장, 굴칫 영감과 토산당 뱀, 거슨샘이와 노단샘이, 오별장 등 유독 이 마을에서는 많이 전해온다. 이처럼 이곳에는 민간 신앙 유적으로 유교식 마을제를 지내는 포제단과 무속식 당제를 지내는 알토산한집이 있다. 알토산한집은 토산2리의 본향당이다. '알당 요드렛당'이라고 부른다. 당신은 '알토산 요드레한집'이다. 나주 금성산의 뱀신이 좌정한 것이라는 당신본풀이가 전하며, '방울풂'이라는 굿의 제차와도 관련이 있다. 이 당은 표선면을 중심으로 서귀포시 일대에 두루 분포되어 있다. 혼인 등으로 인하여 신앙의 범위가 널리 확산한 것이다. 알토산한집의 제일은 6월과 11월의 매 8일이다. 당에서 액막이 한다. 제물로 메 3그릇을 가져간다고 한다.

표선면은 송천과 가시천, 그리고 천미천을 끼고 상류의 중산간 마을과 하류의 해안마을로 분할된다. 중산간 마을인 토산1리는 송천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였고, 가시리와 세화1리는 가시천, 성읍1리와 성읍2리는 천미천을 끼고 있다. 이처럼 송천 하류에는 해안마을 토산2리가 마을이 형성되었다. 표선면에 형성된 마을들은 대부분이 하천을 따라 이뤘듯이 토산 2리도 하천 내의 소와 봉천수에 의존했으며 물과 연유한 유적들이 많다.

그중에 신열이통이라고도 불리는 '산이리통'은 예전에는 식수용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그 밑으로 내리는 물을 이용하여 목욕과 빨래터로 이용하였다. 오리떼가 날아든 데서 유래한 알오리소와 지금도 우마급수용과 빨래터로 사용하는 웃을리소가 남아있는 유적이다.

뚜렷한 사계절과 온난한 기후,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 우리에 삶과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표선면 토산 2리에 찾아보면 볼수록 새롭고 알수록 매력이 넘침을 느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는 내도하는 내외국인에 대한 더욱 철저한 검사를 통해 '코로나19' 청정지를 향해 모든 정책을 쏟아 부어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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