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석홍의 돌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시뮬라크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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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석홍의 돌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시뮬라크르’의 세계”
  • 진순현 기자
  • 승인 2019.05.2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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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화산석을 다양한 형태로 개조해 미술과 과학, 전통과 현대를 결합
“돌은 우리 삶의 원초이면서 모든 문명의 원형”
하석홍 作 '夢돌' 제주바다에 설치

하석홍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하고 제작한 돌이 아닌돌은 전국의 공업사와 쓰레기하치장 등을 순례하며 습득한 결과물인 인조석이다. 제주도의 돌들과 생김새가 유사한 것이 특징이며,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세계를 창조한다. 작가는 돌들을 하늘에 띄우기도 하고 자신을 비취는 돌속에 거울이 되기도 한다.

하 작가는 “돌은 척박(瘠薄)이 새겨진 문신(文身)이며 문명(文明)의 시작이자 문명(文明)의 미래”라고 이야기한다.

하석홍 作. 친환경소재로 형태미와 질감을 그대로 재현한 '제주 현무암'

구멍 숭숭 뚫린 검은 제주석은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찾기 힘든 독특한 형태와 질감을 갖고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연출하기에 따라 하나하나 손색없는 작품의 오브제가 될 만하다. 그런데 하석홍은 물고기 화석 작업에서 해왔듯이 폐지와 우유팩 등 환경친화적인 소재를 이용해 제주 현무암이 가진 형태미와 질감을 그대로 재현해 냈다. 손으로 만져보기 전에는 자연의 현무암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작업은 디테일의 구현에 정교하다. 오랜 기간 정련된 장인적 솜씨가 공력을 발휘했음을 말한다.

하석홍의 근작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미생물로 숙성시킨 폐지 펄프에 천연광물 토르말린 파우더와 먹물, 색소를 혼합해 제주 바닷가나 산야에 널린 다양한 형태의 돌멩이들을 핍진(逼眞)하게 조형해 바닥에 설치한 ‘숨쉬는 돌’과 ‘흐르는 세월에 서 있는 돌’, 상(像)연작들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방법으로 조형해 스테인리스 판넬에 부착한 ‘투영’ 연작들이다.

김현돈 제주대 철학과 교수(미술평론가)는 하석홍이 제주석에 주목한 것은 그것이 갖는 외적 형태와 회화성이 풍부한 질감 외에도 장구한 세월의 흐름 속에 각인된 제주의 자연과 역사성이라고 평한다. 왕방울 눈을 뜨고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돌하르방처럼 못 나고, 대리석이나 화강암처럼 미끈하고 단단하지도 못한 용암석은 겉은 거칠게 보이나 속은 여려 상처 입고 바스라지기 쉬운 제주인의 심성을 닮았다.

하석홍은 제주문화의 원형을 탐구하는 데 남다른 열정으로 작업해 왔다. 그 옛날 제주 목사와 풍류객들이 남긴 마애명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 최근 용연 마애명 복원 조형물을 완성했다. 용연 구름다리 앞에 설치된 하석홍의 작품엔 인조석과 자연석을 섞은 바탕 위에 초서와 행서로 쓰여진 ‘취병담’(용연의 옛 지명) 각명과 윤진오, 임관주 등 목사가 새긴 7점의 한시를 원형대로 복원했다.

작가는 새로운 가상현실의 세계를 연출해 냈다.

윤우학 충북대 명예교수(미술평론가)는 돌의 설치과정에서 오는 한계를 초월하여 보다 자유롭게 설치하는(필요 이상의 큰 돌덩어리를 공중에 메어 놓아 덩어리 자체의 매스 감과 메 달림의 상황적 정황을 극화 시키는 것은 물론, 벽에서 기묘하게 솟구쳐 나오는 선돌의 횡적인 돌출의 드라마조차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 이른바 ‘무중력의 중력’, ‘중력의 무중력’이라는 기묘한 함수관계를 거기에 은폐시킨 채 우주 내면의 수상스러운 초 물리의 현상을 한편의 시각적 드라마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자유분방한 돌의 전시구조는 단순히 신기함을 넘어 독특하고 특이한 물질의 이미저리(Imagery;표상)의 체험을 선사한 채 세계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절차를 교란시키며 시각의 새로운 유영을 즐기게 한다.

그는 최근에 이러한 교란의 프로세스를 자연 환경으로 옮긴 채, 더욱 독특하고 특이한 자연세계의 경험을 제공하고도 있다. 바닷가의 바위들 속에 만들어진 허위의 돌을 중간 중간 위장배치하고 거기에 원색의 붓 터치를 슬쩍 입혀 놓는 ‘지시 시그널’을 상정하여 자연과 예술의 경계를 새로운 관계로 조정하고 있다. 이른바 ‘시뮬라크르’의 역전 관계를 단순한 전환 관계로 싱겁게 끝나지 않게 하려는 작가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표현의지가 작동되고 있음을 느낀다.

작가는 “저는 사실 저의 이 돌멩이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체험의 장을 열어 주고 싶다. 예컨대 저의 돌멩이를 통해 “맨발로 걸어 보세요”와 같은 질적인 체험의 장을 열어 놓고 싶은 것입니다만...사실 미술관이나 화랑에 가면 보통 “손대지 마세요” “사진 찍지 마세요”와 같은 부정적이고 명령적인 언어에 대해 오히려 저는 “앉아 보세요.”라든지 “만져 보세요”와 같은 단어를 통해 보다 대중적이고 적극적인 관람의 체계를 관객에게 제공해 주고 싶다. 예술행위의 권위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관객에게 친절한 세계상을 제공해 주고 싶다는 의도에서 새삼스럽게 출발하고 싶다.”(윤 교수와의 대담에서)

실상, 그의 작업은 단순히 설치작업이니, 실험 작업이니 하는 종래의 장르 개념으로 가늠할 수 없는 세계며 그러한 구분법을 뛰어 넘어 보다 자유롭고 신비한 시각적 이미저리의 세계로 들어 가 새삼스럽고,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엿보여 주고 있는 그러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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