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도 가을성수기때 숙박・교통난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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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가을성수기때 숙박・교통난 발생
  • 김용덕 기자
  • 승인 2020.06.1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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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사는 타시도 여행사 하청업자 불과
'후불관광(後佛觀光)' 제도 독버섯처럼 자라기 시작

1960년 6590명(내국인 6418명, 외국인 172명, 관광수입 1400만원)에 불과하던 내도관광객이 1965년에는 내국인 7만4407명, 외국인 1574명 등 총 7만5901명으로 급증세를 타면서 총 1억5600여 만원의 돈을 떨어뜨리고 갔다.

다음해인 1966년에는 내도관광객이 10만8252명으로 최초 10만명을 넘어선데 이어 1970년에는 내국인 23만8354명, 외국인 7593명으로 총 24만4847명이 내도, 7억6000여 만원의 관광수입을 올리는 등 제3차 산업으로서의 관광산업이 도민소득증대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

이를 반영하듯 1970년초 관광숙박시설로는 호텔 2곳, 휴양시설 2곳, 교통부 지정 여관 1곳 등 5곳 152실을 갖춰 하루 313명의 관광객을 수용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지금처럼 가을성수기만 되면 객실난, 교통난이 나타났다. 10월초부터 11월 중순까지 하루평균 1200명~1400여 명의 수학여행단과 일반단체 관광객 및 신혼부부 등 2500~3000명씩 총 4400여 명의 내국인관광객이 몰려드는 바람에 숙박시설이 크게 부족, 학교 교실과 일반대중식당을 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10대의 대형 전세버스와 마이크로버스 21대 등 총 31대 870명의 관광객 수용능력으로는 수요에 태부족, 시내버스까지 동원해야만 했다.

특히 36곳이나 되는 토산품 판매업체간 가격이 들쭉날쭉해 관광객들에게 불쾌한 인상마저 심어주었다.

기상악화때는 배편을 물론 항공편 마저 모두 두절돼 관광객들은 2~3일씩 제주에 발이 묶이는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여기에다 '관광객은 곧 돈'이라는 인식이 관광업 전체에 팽배, 관광객 쟁탈전이 벌어졌다.

원인은 여행알선업체 난립이었다.

이들의 공항과 부두에서 내도관광객을 서로 뺏고 빼앗기는 이른바 '손님쟁탈전'이 공공연히 벌어졌다. 심지어는 지나친 유치 경챙으로 주먹다짐까지 벌어지곤 했다.

이는 제주관광이 지난 지역적 한계성이기도 했다. 즉 제주는 관광객을 모집해 보내는 곳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곳, 즉 제주는 관광객 공급시장이 아닌 수요시장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제주는 관광객 송출시장이 아니라 관광객 수입시장이기 때문에 여행알선업자들은 타시도 여행사의 관광객 송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지역적 한계성 및 취약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도내 여행사들은 관광객 시장을 개척하고 장악한 관광 도매업자 및 관광운영자가 못돼 티시도 여행사들이 모집해서 보내주는 관광객들을 받아 관광행사를 대행하는 관광소매업자 내지 관광하청업자에 불과했다.

이 때부터 타시도 여행사는 관광객만 보내고 관광객에게서 받은 여행요금은 보내주지 않는 이른바 '후불관광(後佛觀光)'제도가 독버섯처럼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도내 여행사들은 타시도 여행사에서 외상으로 보내온 관광객들을 계약한대로 여행 안내하면서 관련 숙박업체, 식당 등에 다시 외상을 해야하는 '외상관광'이 일상화,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도내 모든 관광사업자들이 심한 경영난을 겪게 됐다.

이를 모면하기 위해 '관광객에게 바기지 씌우기'가 일반화되면서 관광제주 이미지가 크게 훼손, 각종 부작용이 파생됐다.

이 같이 타시도 여행사들의 후불관광으로 도내 여행사들이 출혈과 이에 따른 관광부조리가 만연되면서 관광질서가 크게 문란해지자 여행사 통폐합 문제가 제기되기에 이른다.

결국 제주도는 관광부조리를 막기 위한 여행사 통합에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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