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변하는 시대 잠깐의 여유, 푸근한 인심이 넘치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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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변하는 시대 잠깐의 여유, 푸근한 인심이 넘치는 마을
  • 한기완 기자
  • 승인 2020.06.19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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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의 고단했던 피로를 풀기 위해 사람들이 방문
오래된 팽나무가 마을을 찾은 방문객을 먼저 나와 맞이한다.
오래된 팽나무가 마을을 찾은 방문객을 먼저 나와 맞이한다.

화산섬 제주에 동쪽 조천읍, 오랜 세월 제주인들의 삶의 터전의 되어온 와흘리가 있다. 야트막한 중산가 초지 위에 산굼부리가 한라산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있다. 산굼부리는 제주의 풍광을 아름답게 담아낸 것으로 유명한 영화 '연풍연가'의 촬영지로 태고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오름이다. 와흘리는 이런 제주에서 가장 제주다운 아름다움을 한 번에 표현할 수 있는 오름을 가진 마을이다.

제주시 회천과 이웃하는 와흘리 입구로 들어서면 두 개의 오래된 팽나무가 먼저 나와 방문객을 맞이한다. 시선이 머무는 오래된 팽나무 나뭇가지가 보면 볼수록 풍성한 아름다움에 마음이 절로 편안함을 느낀다. 여름마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을 드리웠을 팽나무. 그 살아온 세월의 세찬 바람과 고뇌가 베어있다. 6월의 장맛비를 맞으며 이미 가지마다 물이 오르고 새순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늘 그 자리를 지켜주는 고향의 나무, 추억의 나무가 조천읍 와흘리를 지키고 있다.

와흘리에 사람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고려 충정왕 때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좌의정까지 올랐던 김해 김씨 김만희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좌의정까지 오르면서 마음이 곧고 사심이 없이 나라의 대사를 돕다가 홍무 25년 7월 16일 태조 즉위 시에 신하로서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는 말 때문에 미움을 받아 제주로 귀향 오면서 제주에 그의 후손들이 살게 됐다. 후손들은 애월읍 곽지와 구좌읍 김녕 등을 거치면서 약 300에서 350년 전에 입도조 9세손이 편안히 살 곳을 찾다가 팽나무가 있는 이곳 와흘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곳은 사방지형이 아늑하고 사람 살기에 알맞은 곳이라서 설촌이 틀을 마련했다고 한다.

와흘리는 사방이 광활하고 초지가 많아 예로부터 우마를 많이 기르고 축산을 비롯하여 감귤과 콩, 메밀 재배로 유명한 마을이다.

동화책에 서나 나옴 직한 오두막처럼 서 있는 카페 건물.
동화책에 서나 나옴 직한 오두막처럼 서 있는 카페 건물.

특히, 와흘리는 한라산과 가까이 있는 동네라 그런지 다양한 종류의 나무 군락지 아주 많다. 중산간으로 올라갈수록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느라 떨구어 낸 비에 젖은 낙엽이 걸을 때마다 여유로움을 더한다. 도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산책로는 걷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 숲 향에 취해 무작정 골목 안으로 걷다 보면 이색적인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동화책에 서나 나옴 직한 오두막처럼 서 있는 카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 골목 끝자락에 바로 이어진 숲속 마을, 편안함을 더한다.

카페라테 한잔에 홀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고의 공간
카페라테 한잔에 홀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고의 공간

카페에 들어서면 진한 커피 향이 코끝을 진하게 자극한다. 어쩐지 이곳에서는 시간이 참 여유롭게 흘러간다. 카페라테와 이곳에만 선보이는 정성스레 갓 구워낸 군밤에 나만이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즐거운 분위기에 시원한 초여름의 바람까지 양념을 얻었으니 커피의 맛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와흘은 한라산의 정기를 받은 산맥의 모양이 완만하고 천천히 바다로 흘러내리고 있어 그 지형 모습이 편안하게 누운 사람이 형체와 같다고 한다. 이러한 지형 모습을 본떠서 누울 '와(臥)'을 서서 '와흘리'라 했다. 와흘이란 지명이 말해주듯 편안한 마을이 되기까지는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가 자신의 소중함과 가치가 귀함을 여기고 행복하기를 소원하면서 마을에 본향당을 모셨다. 본향당을 통해 마을 사람들은 안전과 복을 구하며 지금까지 이어왔다. 새해가 되면 설날에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듯 와흘 본향당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에 신에게 세배하는 '신과세제'를 드린다. 와흘 사람들은 이 마을의 모든 일은 본향다인이 주관한다고 믿고 있는데,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 집마다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고 하루아침에 재물을 잃어 가난해지는 일, 또한 객지로 나갔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들도 모두 본향당신이 맡아 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본향당신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데, 이날은 심방(무당)이 종일 굿을 하며 신을 즐겁게 해준다. 이런 정성이 모여 더 편안하고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마을이다.

도심에서의 고단했던 피로를 풀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 마을. 옛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아 푸근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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