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문양 바위의 결들에서 태곳적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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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문양 바위의 결들에서 태곳적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곳
  • 한기완 기자
  • 승인 2020.08.07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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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밑의 퇴적암이 융기하여 형성된 마을 '화순리'

학창 시절 수학여행 가듯 들뜬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여행지 안덕면 화순리. 120만에서 70만 년 전 제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눈에 느껴볼 수 있는 지질역사 박물관 화순리는 추억의 시간여행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화순리는 서쪽에 산방산, 동쪽에 월라봉 사이 해발 10~80m 사이에 형성된 마을로 북쪽은 높고 남쪽은 낮은 남저북고형을 이루며 높은 북쪽은 잡목이 우거진 '곶'으로 되어있다. 동서는 폭이 좁고 남북이 긴 형태로서 마을 안에는 처남 동산, 신산 동산, 썩은 다리 동산 등 크고 작은 동산이 있어 굴곡을 형성하며, 곳곳에 용천수가 솟아 그 물 주변에 취락이 형성되었다.

서쪽은 산방산이 웅장한 자태가 마치 마을의 수호신처럼 내려 보고 있으며, 동쪽은 창고천, 고래소, 도막은소, 도채비빌레를 휘감아 돌아 황개천에 이르러 태평양으로 흘러간다. 제주에서 보기 드문 지질과 절경을 이루는 이유는 이곳이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지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제주도가 4단계 과정을 걸쳐 섬이 만들어졌다. 1단계는 120~70만 년 전, 제2단계는 60~30만 년 전, 제3단계는 30~10만 년 전 제4단계는 10~2.5만 년 전으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안덕면 화순리는 1단계에서 생성된 곳이다. 제1단계는 제주도 서남쪽 산방산, 각수바위, 월라봉, 제지기 오름을 잇는 해안선이 융기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바다 밑의 퇴적암이 융기하여 형성된 것으로 송악산, 용머리, 서귀포 해안가 등에서 패화석(貝貨石)이 발견되는 것이 융기되었다는 증거이다. 이 지역은 바다에서 융기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절벽의 형태를 갖고 있는데, 용머리, 안덕계곡, 엉또폭포, 천지연, 천제연, 정방폭포, 중문 해안가 절벽 등이 모두 이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이 시기에는 조면암이 융기되어서 지삿개와 같은 절경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제주의 마을은 용천수와 비옥한 토지가 있거나 해안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듯이 화순리는 곤물과 번내 등, 두 지역에서 전후하여 마을이 형성되어 1840년대에 와서는 이 두 지역을 통합하여 화순리가 되었다.

'곤물'은 화순리 1190번지 길옆 바위 밑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이다. 원래는 마을 안으로 흐른다는 뜻에서 '골물'이라 하다가 '곤물'로 변형되었고, 윗동네 이름인 곤물동이 화순리의 한 마을을 이루었던 곳이다.

이 마을의 설촌 이야기가 있는 '번내'는 화순리를 통칭하는 고유명사이다. 안덕천은 하류를 따라 창고천에서 감산천을 거쳐 화순리에 이르면 폭이 넓어지면서 바다로 흘러들어서는 황개천에 이른다. 

번내는 물이 하류로 내려오면서 제주어로 '번번ᄒᆞ게(높낮이가 없어 널따랗게)'흐르기 때문에 이두식 한자음 표기로 범천, 번천, 반천으로 이어오다가 18세기 이전에는 하천명과 함께 포구와 마을을 뜻하는 지명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어 번내와 곤물로 불렀던 두 마을이 화순리로 통합됐지만, 아직도 고유 명칭은 '번내'로 통한다.

화순리는 대평리에서 출발한 올레 9코스가 바다를 수직으로 깎아지른 바위 절벽 박수기정을 따라 안덕계곡을 지나 화순에서 멈춘다. 안덕계곡은 예로부터 많은 선비가 찾던 곳으로 제주에 유배 온 완당 김정희 선생도 이곳을 찾아 절경에 탄복하였다고 전한다. 한라산이 처음 화산 활동 하면서 제주도에서 제일 먼저 지각변동을 하며 융기했던 곳이 이곳이기 때문에 1백만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며 만들어진 자연풍광이 안덕계곡이고 그 하류가 화순리이다.  

올레 9코스가 멈춘 화순에서 다시 올레가 시작된다. 이곳에서부터 대정 하모까지 이어지는 올레 10코스에서 화순리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화순해수욕장에 들어서면 마라도와 형제섬이 지척에서 서로 마주하는 것이 정답기만 하다. 산방산 기슭에서 흘러나온 퇴적암 지대는 용머리 해안을 따라 화순해수욕장까지 이어진다. 수백 년 동안 바람과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빗살문양 바위의 결들이 남아있는 태곳적 시간을 이곳에서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화순리에서 오래된 시간의 결을 밟으며 걷다 보면 또 다른 시간으로 들어간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지나쳐 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잠시나마 우리에 일상조차도 잊어먹을 때 비로소 영혼은 자유롭고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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