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 '표해록'이 완성된 '한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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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 '표해록'이 완성된 '한담길'
  • 한기완
  • 승인 2019.04.2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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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여기 어디우꽈

[편집자 주] 제주는 문학의 흐르는 동네다. 그 문학은 하루아침에 이루지는 그것이 아니고 수많은 세월 동안 쌓이고 싸여 역사를 만들며 발전해왔다. 그 문학의 발상지인 제주시 애월읍 한담동에는 우리나라 해양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인 장한철의 표해록이 완성된 곳이다. 

 

제주다운 멋스러움이 넘치는 산책길 
제주시 하귀에서 출발한 애월 해안도로가 끝나는 시점에 또 다른 길이 시작된다. 제주시 애월리와 곽지리의 경계인 한담동에는 '장한철 산책길'이 있다.
속칭, 한단마을이라 불리는 이 마을은 해안 절경이 수려하고 일몰 시 낙조로 유명세와 더불어 산책로로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한담공원에는 몇 해 전부터 카페가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바닷가 포구까지 촌락을 이루고 있다. 해안보다 20m 높은 동산에 위치한 한담 공원에서 서쪽 바다를 내려다보면 곽지과물해변까지 잘록한 아름다운 여성의 몸매처럼 펼쳐지는 해안선과 어우러진 장한철 산책로에는 많은 인파가 줄을 잇고 있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돌담길은 새롭게 단장을 하여 옛 정취는 덜하지만, 그나마 현무암이라는 느낌이 살아있어 제주다운 멋스러움은 느낄 수가 있다. 
 

 

해양문학의 백미, 표회록이 탄생하다
해안선을 따라 곽지과물해변까지 이어지는 '장한철 산책로'에는 전해오는 사연이 있다. 
조선 영조 때 제주도 대정현감과 강원도 흡곡현령을 지냈던 장한철의 고향이 바로 한담해변의 우리말 이름, '한대코지'이다. 장한철은 과거를 보기 위해 1770년(영조 46년) 12월 25일 그의 일행들과 배를 타고 제주를 떠나 한양으로 가는 데 육지에 도착하기 직전에 풍랑을 만났다.
배는 태풍에 휩쓸려 사흘 뒤 그가 도착한 곳은 지금의 오키나와 호산도였다. 다행히 그곳에서 한 상선에 의해 발견되어 무사히 구조되어 1월 6일에 흑산도 근처에 다다랐다. 하지만, 하늘은 그의 대과 응시를 허락하지 않는 듯 다시 태풍이 불어 닥쳤다. 겨우 격랑 속을 표류하던 배는 청산도에 표착했고 그 과정에서 장한철과 동승했던 일행 29명 중 8명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표류담은 그 이야기를 글로 남아있는 것이 표해록이다.
표해록은 해양문학의 백미로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사료로서의 가치는 물론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널리 알리고 선생의 명망과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리고자 한담 길을 '한담 마을 장한철 산책로'로 명명했다.
 

 

옛 추억이 떠오르고,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곳
산책로에 들어서자 먼 바다를 건너온 바닷바람은 따뜻한 봄볕이 만들어낸 산책객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고, 해안가 야생화의 몸을 흔들어 놓는다. 바닷바람 앞에서 산책객도 저절로 몸이 낮춰지며 걸음걸이는 더디기만 하다.
바닷가 저 멀리에는 수십 개의 테왁이 떠 있다. 물질하는 해녀들이 모습을 보기 위해 걷던 걸음을 멈추고 바위에 걸터앉았다. 해녀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 내가 어릴 때의 해녀의 모습은 검은 바지에 흰 광목 저고리가 전부이고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행장을 풀었던 불턱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고무 옷과 현대식 해녀 탈의실만이 다를 뿐이다.
물속으로 잠수한 해녀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눈을 살며시 감고 해조음에 귀를 기울여 본다. 철썩철썩 바위와 파도가 부딪쳐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에 정신이 팔리다보니 자연스레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옛 추억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엄마가 물질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 혼자 온종일 남아 있어야 할 아이들은 동네가 터지도록 울며 난리 치다 지쳐 잠이 들어 버린다. 그리고 엄마는 혼자 남겨둔 아기 생각에 물에서 나오자마자 소라 전복을 딴 무거운 짐을 등에 업고 허겁지겁 집을 향했다. 이런 상황은 우리 어머니들의 일상의 모습이었다. 우리 어머니들에 고단함과 힘든 과정에 살아야만 했던 이유를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조금은 알 것만 같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야생초 향연
바위틈 사이사이에 끈질긴 생명력의 위대한 야생초를 품어 안은 고양이 바위로 시작하여, 하마 바위, 가린 돌, 창문 바위 아기공룡 바위, 치소기암, 코뿔소 바위, 거울 바위 등이 곽지과물해변까지 이어진다.
이뿐만 아니다. 주변은 계절마다 각기 다른 식물의 군락을 이루는 야생화 정원으로 술패랭이꽃 고비, 개머루, 밀사초, 갯기름나물, 개솔새, 도깨비고비, 나문재 군락 등 많은 종류가 자생하는 야생화 서식지의 보고이다.  이 길을 따라 지나다 보면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야생초들의 생명력의 위대함에 탄성이 절로 난다.
한담마을 장한철 산책길에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마음을 비우고 바닷길에 서니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함께 또 다른 새로운 만남이 있다. 무너진 환해장성과 기암괴석, 야생화에서까지 옛 선인인 장한철뿐만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살았던 흔적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파도와 마주하며 이어진 산책길은 웅장하지도 거대하지 않은 소박한 길이다. 그곳에서 제주인의 살았던 삶의 지혜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걸림 없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의 향기를 찾는 모든 이에게 전하고 있는 듯하다.
<한기완 기자 / hankiwan@hanma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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