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것을 다시 보면서 찾게되는 이야기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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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것을 다시 보면서 찾게되는 이야기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9.08.0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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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리 조각가 "The Way of Memory"
w스테이지에서 윤혜리 조각가의 석사 수료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w스테이지에서 윤혜리 조각가의 석사 수료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희노애락'을 담은 오브제 '버려진 폐그물' 

  윤혜리 조각가는 지난 9일 오현단 인근 W스테이지에서 석사 수료 작품전시회를 가졌다. 그녀의 나이 올해 60세로, 5년 전 제주대학교 미술학부에 편입 후 석사수료과정을 거치며 작품 활동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녀는 "미술을 해오던 사람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작품을 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대학원 진학 후 어느 날 해수욕장에 버려져 있는 그물을 얻어 홀린 듯 시작했다"며 "결국 내 안에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은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것, 불완전한 것, 사라져 가는 것, 버려진 것에 관심과 마음이 늘 쓰였고, 기존의 것을 다시 보면서 찾게 되는 이야기를 소중하게 생각해 왔다고 한다.

20년동안 쓰이고 용도 폐기된 폐그물.
20년동안 쓰이고 용도 폐기된 폐그물.

  윤 조각가는 이후 2톤가량 폐그물을 모았고, 그물에 엉겨 붙어있는 모래와 소금기를 빼기 위해 2년 동안 그물을 빨았다. 55리터짜리 플라스틱 통 4~5개에 나누어 애벌빨래를 하는 육체노동의 시간이 한 번도 힘들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에게 늘 설레고 두근거리는 시간이었다. 20년 동안 쓰이고 용도 폐기되었던 폐그물은 빨면 빨수록 제 것만의 색감을 드러내며 결국 새롭게 태어났다. 인간의 '생노병사', '희노애락'를 드러내고 있는 그녀의 폐그물 작품은 우리에게도 화두를 던진다. 

  그녀는 주말이면 바다로 나가 밀려들어온 유목들, 어구, 해안가 바위에 들러붙은 탈색된 그물들을 거둬서 '바람과 바다에 휩쓸려 새로운 모양을 얻은 오래된 것들이 가진 이야기'들을 작업 소재로 쓰고 있다.

  자신에게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다 

  윤조각가는 나이 들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가장 좋은 점은 자신에게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과 더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고 평생 함께 할 작품 오브제를 만났으니 지금 현재 그녀는 더 없이 감사하다. 

  그녀는 또 제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덧붙였다. 봄 햇살과 바람, 육지의 산세와는 다른, 심심하고 단순하지만 세월을 안고 있는 오름 오르기를 좋아하는 그녀가 제주에 정착한 것은 1989년으로 벌써 30년이 되었다. 본래 간호학을 전공했고 서울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제주가 고향인 남편이 귀향을 원해 함께 내려와 정착하게 되었다. 5년 전에 친정엄마, 남동생, 언니도 모두 제주로 이주했다.  

  동네 삼춘들을 길에서 만날 때면, 인사뿐 아니라 '어디 감수꽈'라고 꼬치꼬치 물어 괜히 난처하고 당황했던 시간들, '몇 시에 만나자'가 아니라 '저녁 먹고 보게'하면 한 시간씩 기다리는 등 문화적 차이에 적응해야 했던 시절이 이제는 그녀에게 더없는 추억이다.

  한편, 그녀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제주만의 '안거리 밖거리'주거문화에 탄복했었고, 지금 생각해도 대단히 진보적이라며 자연뿐 아니라 제주의 문화, 삶의 지혜가 더 잘 정리되고 보존되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윤혜리 조각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
윤혜리 조각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

  윤혜리 조각가는 제주 여성 작가들이 강단 있고 열성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모습을 볼 때면 늘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그녀는 제주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인문학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기회가 많아지길 기대하며, 그 길에 자신의 역할을 찾고 함께 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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