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진짜' 무용 인생으로 나아가게 하는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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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진짜' 무용 인생으로 나아가게 하는 제주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9.10.0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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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의 육아 문제로 제주에 정착한 한국무용가 박연술씨
한국무용의 전통미를 경쾌하고 화려하게 선보이는 박연술의 춤사위.
한국무용의 전통미를 경쾌하고 화려하게 선보이는 박연술의 춤사위.

살아있는 이들, 현재를 위로하는 춤을 춘다.

서귀포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남영호가 1970년 12월 15일에 여수 앞바다에서 침몰해 326명이 희생된 사고가 있었다. 서귀포항에 세워졌던 조난자 위령탑은 1982년 서귀포항 항만 확장으로 돈내코 어딘가로 옮겨졌다가 2014년 정방폭포에 세워지면서 세상에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12월 15일 '남영호 위령탑 제막식 및 위령제'에서는 한국무용가 박연술(51)씨가 44년만에 진혼무로 아버지를 만났다. 1970년에 그녀는 한 살이었고 남영호 사무장이었던 아버지를 잃었다. 그 곳에서 펼친 그녀의 진혼무는 그 누구보다 사뿐히 지르밟을 수 없는 춤사위었을 것이다.

그녀는 4·3 위령제, 세월호 추모 공연에서 씻김굿, 살풀이 등을 출 때면 '영혼을 위로하는 과거가 아니라 살아있는 이들의 현재를 위로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녀 자신에 대한 위로와 치유도 포함되는 것이다. 

제주를 소재 삼아 제주를 무대 삼아

박씨는 어떤 한계도 없을 만큼 열정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예술 활동을 펴고 있다. 제주의 자연과 문화, 스토리가 소재이자 주제이고 무대 그 자체이다.

한중일 청소년 문화캠프에서 한국무용을 강의하고 있는 박연술씨.
한중일 청소년 문화캠프에서 <소통의 몸짓.움직임> 수업을 하고 있는 박연술씨.

그녀는 무용가, 소리꾼, 콘트라베이스, 타악기 연주자 등으로 구성된 '나무꽃'이라는 아트프로젝트 그룹으로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콜라보 공연을 펴고 있다. 또한, 제주국제즉흥춤 운영위원으로 즉흥춤페스티벌을 하는가 하면, 한중일 청소년 문화캠프, 제주평화축제, 탐라문화제 등에서 공연과 안무를 맡고, 서귀포문화원 예술단과 초등학교에서 예술강사로서 교육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칠십리 축제 행사에서 서귀포문화원 예술단이 해녀춤을 공연하고 있다.
칠십리 축제 행사에서 서귀포문화원 예술단이 해녀춤을 공연하고 있다.

특히, 그녀는 해녀의 삶을 춤으로 만들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하였는데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국제무용갈라쇼'무대에서 현직 해녀 어멍의 방언을 배경음악으로 해녀 춤을 선보여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지난달 '서울문화원 엑스포'행사에서는 서귀포문화원 예술단의 '해녀바당'공연을 안무하기도 했다. 

제주 '영등굿'은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제주를 찾아와 보름동안 행해지는데 영등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제주의 민속제례이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가 주최·주관하는 축제로 제주 곳곳을 다니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영등 할망 보름질 걷기'를 진행한다. 행사에 참가하는 공연자들은 마을 연출과 공연으로 육체적 한계를 느낄 때도 있지만 제주 전역을 순회하는 마을축제이자 제주 문화를 보존하고 활성화하는 데 있어 그녀에게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이다.

'의미·가치·뜻'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박연술씨는 5살부터 무용을 시작했고,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숙명여대에서 공부하고 석·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녀는 승무 계승자이자 인간문화재인 벽사 고(故) 정재만 선생이 숙명여대에서 배출한 첫 번째 제자이다. 안양예고, 서울국악예고, 숙명여대, 수원여대 등에서 강사로 10년 넘게 후배들을 길러냈고, 2002 한일 월드컵 전야제, 아시아육상선수대회 개막식, 2014 제주 전국체전 개막식 등 공연에서 안무를 맡는 등 이력 또한 화려하다. 

2013년에 남편 직장 이전과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들들의 육아 문제로 제주에 정착한 박씨. 그녀는 "서울에서 활동할 때는 커리어를 쌓고 테크닉 중심으로 춤을 췄다면, 제주에서는 화려한 조명보다 자연이라는 무대에 적응하고 관객의 눈을 바라보며 진짜 춤을 추는 나를 발견했다"며, 제주는 그녀에게 제2의 '진짜' 무용 인생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그녀는 제주가 '문화가 있는 섬'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제주의 인재를 키울 수 있는 예술고등학교, 예술대학 등 중·고등 교육과정 인프라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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