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잠수, 공동체 위해 그동안 철저한 양보와 지원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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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잠수, 공동체 위해 그동안 철저한 양보와 지원 마련
  • 제주관광신문
  • 승인 2019.10.21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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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시대·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기록에 '좀녀', 'ᄌᆞᆷ녜', '잠수', '보재기'는 한자어에서 따온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좀녀'·'ᄌᆞᆷ녜'는 潛水(잠수)에서 파생한 명사이고, 물속에서 일하는 형수 즉 여자를 표현한 형상과 사실 언어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잠녀'나 제주도 방언인 'ᄌᆞᆷ녀'또는 'ᄌᆞᆷ녜'라고 불렸다.

보재기라고 부르는 것을 한자음을 빌려 '포작'이라고 쓰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나중에는 잠수에도 쓰이기도 했다. 원래 남자 잠수부는 포작인(鮑作人), 포작간(鮑作干), 포작한(鮑作漢), 복작간(鰒作干) 등은 전복을 채취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해녀라는 용어 자체는 일제강점기에 등장해 용어라서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다가 2006년도 당시 북제주군에서 해녀박물관 명칭을 공모하면서 해녀로 표기하자는 의견이 많아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러 역사지에는 진주를 진상했고, 전복을 말려서 진상하다 남으면 팔아서 필요한 쌀 같은 생활필수품을 구상 교류를 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 당시 산업이라는 거창한 명사를 쓸 이유도 없지마는 먹고사는 문제는 잠수들이 도맡아서 해 온 증거는 남자들이 일할 몫이란 게 별로 없었다. 물질이 끝날 때쯤에 마중 가서 채취한 해산물을 운반하는 정도다. 아직도 그런 풍경을 볼 수가 있는 마을이 몇 곳 있다.

제주가 역사적으로나 경제사적으로 볼 때 잠수들은 철저한 자유시장주의자들이다. 특히 약자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철저한 양보와 지원을 했다는 것이 곳곳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학교를 지원하거나, 마을 운영비를 지원했던 사실들이 이를 증명한다. 즉 당시에 여성 경제인으로서 의무랄까 노블레스 모블리주 이다. 또한 잠수들은 철저한 자유 경쟁 원리가 작동하고 그 권위를 인정해 왔던 증거가 상군, 중군, 하군이라는 그들만의 계급이다. 경쟁과 능력을 존중했던 사회였기 때문에 자유 시장적 공동체가 형성할 수 있었다. 요즘 말로는 개인 기업가인 셈이다. 개인 기업가 정신은 우선 남을 배려했다.

예컨대 잠수를 육성하려고 얘기 바다도 만들어 주고, 최고령 선임 잠수를 위해 할머니 바다도 여지를 남긴 최고의 CEO들이다. 그리고 제주의 물산을 책임지고 생산하려고 칠성판을 멨다. 나의 희생이 내 가족, 나의 지역, 나의 나라가 잘 먹고 살게 하는 일념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까. 일본강점기 때는 수탈과 핍박에 저항하고 항쟁을 일으켰던 주역들이다. 해방 후에도 마을 위해, 학교를 위해 목숨과도 같은 돈을 지원해 왔던 것도 그들만의 소중한 흔적들이 곳곳에 많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잠수에서 해녀로 명사가 바뀐 탓인지 그런 배려가 없어 보인다. 자원 약탈적 이기주의에 빠진 것 같아서 슬프다. 이에 부추기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도 어이가 없다. 해녀를 위하는 척하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고 있다고 할까. 해녀들의 삶을 그들은 어떻게 알까. 유네스코 인류 유형문화유산이란 타이틀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정체성이 파괴되는 것을 보노라면 분통이 터진다. 경제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해녀라는 주변에도 가짜들이 진짜를 몰아낸다. 진짜들은 속임수 따위는 없기 때문에 토사구팽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냥 지켜볼 뿐이다.

어쩌면 현재의 해녀들 위상은 오천 년 역사 이래 가장 혜택을 받고 자랑스러운 왕관을 쓰고 있다. 그런데 개인 기업가로서 선배들의 일구어온 자유시장주의의 원칙인 경쟁과 협력의 덕이 없어 보이는 것이 안타깝다. 해녀들이여 견물생심에서 벗어나 미래 후손을 위해 자원을 양보하는 덕이랑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온갖 사회적 위상이 높아질수록 잠시라도 오천 년 동안 일구어온 선배들에게 불렀던 ᄌᆞᆷ녀. ᄌᆞᆷ녜, 보재기라고 천시받았던 역사를 잊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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