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형문화유산인 해녀를 위한 최고의 복지 '해녀 전당'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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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무형문화유산인 해녀를 위한 최고의 복지 '해녀 전당' 건립
  • 제주관광신문
  • 승인 2019.11.2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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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해녀박물관 제공)
(사진=해녀박물관 제공)

인간에게 죽음은 자연스러운 당연함이다. 스스로 독립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때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형태로 생을 마감하는 의식을 맞이한다. 죽음의 과정도 다양하다. 아파서도, 사고로도, 의사자도, 순직도, 전사도 죽음의 양태이다. 인간은 죽음을 존엄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러움 때문일까.

이러한 관점에서 고귀하고 품위 있는 죽음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현장에서 일하다가 맞이한 죽음이 아닐까 한다. 어떠한 현장이라도 좋다. 현장은 자신과 남을 위해서 일하는 공간이다. 예컨대 순직, 전사, 의사자 등은 자신과 남을 위하다가 맞이한 죽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서 성찰을 하거나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죽음은 자신과는 먼일이라고 치부하고 생을 자랑스럽게 영위하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음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아툴 가완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책에서 "우리는 모두 태어난 순간부터 나이가 들다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삶의 비극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죽음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죽음은 비록 우리의 적일지도 모르지만,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또한 논어 학이편 제9장에서 증자는 신종추원(愼終追遠), 민덕후의(民德厚矣)라는 말을 했다. 신종추원이란 존엄한 죽음과 조상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제사에 대한 언급이고 이렇게 할 때 백성들은 후덕하게 된다는 뜻같다. 여기서 종(終)은 마침을 의미하고, 순직, 전사, 의사 자의 의롭고 숭고한 죽음이라고 의미라고 덧붙이고 싶다. 종(終)은 일상의 마침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풀이를 한다. 곧 생(生)도 사(死)의 원인이고 사(死)도 생(生)의 원인이기에 일상의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본다는 측면에서 신중함을 경계한 것으로 여겨진다.

필자는 평소에 해녀들이 물질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그 사실을 '신종추원'의 대상이 아니냐고 우겨댄다. 해녀가 물질하다가 죽음을 맞이 한 것이 장엄한 종(終)이라고 여겨 새로운 시작(生)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끔은 행정이든, 의회이든, 언론에서도 '노령 해녀 사고방지대책'을 만들라고 호들갑 거리는 것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증자가 얘기한 '신종추원'을 생각해 본다.  이런 연관성에서 우리의 해녀는 칠성판을 메고 자신을 버리고 자식과  형제자매, 혹은 지역과 국가를 위해 저항하고 자연과의 함의를 해왔다. 어머니 품과 같은 바다에서 물질하다가 맞이한 죽음은 순직이요, 전사이다. 왜냐하면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의 주체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물질하다가 해녀 사망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이런 결과를 과연 해녀들이나 특히 가족들, 일반인은 과연 어떻게 인식할까. 존엄하고 행복한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우리는 때로는 현상만 보고 단호한 결론에 도달하려는 조급증에 본질을 외면한다. 마치 바로 노령 해녀 사망사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처럼, 그들에게 "물질하지 맙써!"할 때 해녀는 뭐라고 할까?

그 옛날 북제주군 신철주 군수께서는 바다에서 맞이한 죽음이 너무 경외롭다해서 다소나마 위로하는 측면에서 상조 지원조례를 만들어 500만 원씩 장례비를 지원했다. 지금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조례로 이어지고 있지만 그러한 일련의 작용이 해녀의 숭고한 가치를 정립게 한 것이다.

특히 해녀의 공동체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개개인의 문화유산으로서 그 의미 또한 살아있는 문화이다. 그래서 바다 물질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해녀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신종추원의 해녀 전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아마 제주특별자치도의 위상을 일으키는 일이 아닐까 한다. 무슨 '물질 사망사고 예방대책'이 아니라 해녀 가슴에 바다를 향한 불씨만 있어도 바다에서 놀게 하는 것이 해녀를 위한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해녀 전당'에 평생 칠성판을 메고 물질하게 한(限)과 기쁨을 고이 전시하는 것 그 흔적을 간직하게 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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