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지혜로 척박한 환경을 변화 시켜 아름다운 터전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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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지혜로 척박한 환경을 변화 시켜 아름다운 터전 마련
  • 한기완 기자
  • 승인 2020.03.02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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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못 보고 지나쳐온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마을
선조들이 옛 생활 터전인 봉성리 마을 전경.
선조들이 옛 생활 터전인 봉성리 마을 전경.

제주의 중산간에 자연환경이 좋은 애월읍 봉성리가 있다. 산림이 무성하고 농토가 넓어 사람 살기가 편안해 오래전부터 어도봉 서북쪽을 등지고 양지바른 곳에 선조들이 생활 터전을 마련해 지금까지 이어왔다.

지금은 400여 가구에 130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봉성리는 구몰동, 신명동, 중화동, 서성동, 동대동, 화전동 등 6개의 자연마을이 감귤과 보리, 양배추 등을 재배하며 사는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다.

한라산 기슭이 서북 측으로 뻗어 나가면서 화산활동을 통해 분출한 용암이 현무암층을 이루며 계곡과 경사도를 이루면서 어도봉에서 멈췄다. 풍수지리학적으로 형상이 마치 '봉황이 날아드는 모양'에 터를 잡은 곳이 '봉성리'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들불 축제가 열리는 새별오름을 비롯 9개의 오름을 갖고 있을 정도로 오름이 많다.

조선 시대 고종 이후 '어도리'로 불렸던 봉성리가 개명하게 된 실질적인 이유는 4·3과 크게 연관돼 있다. 4·3과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3년 3월 19일 이(里)민총회 결의로 이루어졌다. 4·3사건이 끝나고 폐허된 마을을 재건하고 불안한 사회환경에서 리민의 안녕과 화합은 물론 마을의 면모를 새롭게 혁신 발전시키기 위해 '봉성리'로 개명했다.

당시 개명 추진위원 16인을 선정, 자체적으로 연구·검토하고 대명가에 문의해 지형과 지세를 고려해 봉성리로 정했다. 이는 마을 맥과 어도악 후봉형체가 봉황새 같아서 앞 자를 봉(鳳)으로 하고 주민들이 성(城)을 굳게 축성하였으므로 뒤 글자로 '성(城)'자를 넣었다. 이처럼 봉성리는 지형·지세와 주민들의 인화심이 만들어낸 지명이다.

어도초등학교에서 바라본 어도봉 모습.
어도초등학교에서 바라본 어도봉 모습.

봄의 빛깔과 봄의 향기가 기지개를 피기 시작한 봉성리의 봄은 '어도 오름'부터 시작된다. 마을 뒤로 중산간 도로 하나 건너면 어도오름으로 이어진다. 동네 뒤로는 병풍처럼 어도 오름이 마을을 감싸 않고 있고 앞으로는 한라산 줄기가 이곳을 향해오면서 새별오름과 마주치며 마을을 보호하듯 서 있다. 여기에 그냥 앉아만 있어도 마음의 편안하고 절로 힐링 되는 듯하다. 겨우내 이겨낸 산나물과 초록이 우거져 있는 '어도 오름'의 산책길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 이른다. 마을을 우회하는 새로 뻗은 중산간 도로와 입구가 연결된 산책로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시끄럽던 자동차 소리는 금세 사라지고 청정자연의 숨 쉬는 숲으로 바로 직행한다. 소나무 우거진 사이로 새소리가 아름답다. 산중에 미물도 졸린 눈을 비비고 내려와 제 살림을 꾸미느라 분주하다. 숲속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고요한 바람이 지나가며 먼지를 털어낸 듯 정갈한 사이로 분주한 새소리만 정적을 깬다. 한림과 연결된 이 도로를 수없이 다녔는데 불구하고 이 오름을 잊고 있었다. 10년 전 쯤에 올랐던 기억은 있었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산책로는 정비가 잘 되어있다. 어도 오름은 동쪽과 서쪽의 두 개의 봉우리로 이뤄졌다. 주봉인 동쪽 봉우리에는 조선 시대에 사용했던 봉수대가 남아 있다. 서쪽 봉우리 중턱에는 도림사가 있다. 도림사는 보우선사가 적거하다 사살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보우선사는 조선의 불교 말살 정책 속에서 쓰러져가던 불교를 중흥 시켜 폐지됐던 선(禪)·교(敎)양종과 승려 과거제도를 다시 일으키고 이를 통해 서산·사명당과 같은 훌륭한 인재를 발굴해 불교계가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선두에 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스님이다. 무슨 때문인가. 제주로 귀향 왔다가 이 오름 기슭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이 오름에는 우리가 못 보고 지나쳐온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

추억이 소환되는 '점방'이라는 간판이 있고 편안한 마을.
추억이 소환되는 '점방'이라는 간판이 있고 편안한 마을.

봉성리는 정겹던 옛 골목도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름만으로 아득했던 시절의 추억이 소환되는 '점방'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문도 안 잠그고 다니는 편안한 마을. 오래된 집들에 새로운 문화가 채워지면서 봉성리에는 또 다른 세상이 움트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애월읍 봉성리는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닮은 마을인 것 같다. 정감 넘치는 작은 마을이다. 그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 척박한 자연을 이기고 오늘에 이른 것은 선조들의 지혜로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변화시켜 아름다운 터전을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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