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의 흔적에 현대가 아우르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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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흔적에 현대가 아우르는 마을
  • 한기완 기자
  • 승인 2020.09.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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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수 '거악대물'를 중심으로 약 400년을 이어온 터전
생수가 흐르는 쪽에 네모나게 물통을 만들고 그 뒤로 빨래하는 곳, 채소 씻는 곳 등으로 구분해 놓았으며,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지금도 이곳에는 동네 아낙들이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곳 거악대물 모습.
생수가 흐르는 쪽에 네모나게 물통을 만들고 그 뒤로 빨래하는 곳, 채소 씻는 곳 등으로 구분해 놓았으며,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지금도 이곳에는 동네 아낙들이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곳 거악대물 모습.

가을을 맞아 제주의 구석구석 숨어 있는 곳을 찾는 여행도 즐겁다. 이번에 찾은 곳은 감귤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제주시 애월읍 광령2리이다. 광령2리는 제주시 애월읍 동남단에 위치한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다. 광령1리는 제주 시내와의 거리는 10km이며 서쪽 고성리와는 2km, 북쪽으로 외도동과는 3km의 거리에 있다. 광령2리는 본동에서 남서쪽 1km에 있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마을의 위치를 가늠해 보면 한라산 맥이 서북으로 날개를 뻗어 30여 리를 내려와 노루봉을 낳았다. 노루봉은 속칭 '노리오름'이라고 하는데 큰노리오름, 셋노리오름 뒤에는 가뭄에 마르지 않는 샘물이 사철 솟아 과거 우마 방목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노루봉이 다시 동북으로 30여 리를 뻗으며 광활한 목장 지대를 이루었는데 여기에 광령을 비롯하여 해안, 고성, 유수암 등 인근 마을 공동목장이 형성되어 마을 축산업의 바탕이 되었다.

광령리 마을 주변에는 맑게 솟는 다섯 개의 연못이 있다. 그러나 마을 안에는 샘물이 거의 없어 상수도가 설치되기 전에는 불편도 컸다. 한때는 수로를 이용하여 무수천 상류(어승생)의 물을 끌어다 생활과 농업용수로 사용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수량이 풍부한 지하수가 개발되어 농업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길은 태곳적에도 있었다. 오랜 전통과 유서가 깊은 광령2리에도 설촌 이후부터 이어지는 길 위에는 수많은 사람이 그곳을 걸으며 지금까지 역사를 만들고 애환이 곳곳에 묻어있다.

광령2리와 고성리 경계에 있는 백제사에서 길을 나서서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노랗게 물들어 가는 감귤원과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의 전경은 분주하고도 평온하다.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감귤나무에 탐스럽게 익어가는 열매들이 포도송이처럼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렸다. 세상사 영원한 것이 없듯이, 7~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나무라고 할 정도로 귀하고 귀하던 나무의 신세도, 지금은 흔하디흔한 과실수에 불과하여 누구도 눈길을 보내는 이도 없고 간혹 보이는 여행객들이 탄성만이 보일 뿐 고즈넉한 여운만을 남긴다. 

혼자 걷는 길은 고독하다. 입은 굳게 다물고 있지만, 머릿속 가득히 온갖 번뇌 망상이 유영한다. 그러나 떠나온 길이 멀어지고 멀어질수록 잡다한 수많은 번뇌가 처마에 달렸던 고드름이 하나씩 떨어지듯이 결국에 내 마음속 간절한 만이 남는다.

침묵 속에 걷다 보면 영혼을 맑게 해주고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환한 등불에 길잡이가 바로 시골길 탐방의 참맛인가 싶다.

법장사 앞 작은 농로로 접어들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마을에 궂은 액을 막기 위해 용천수가 솟아나는 샘터에 돌이나 나무로 사람 형상을 제작하여 세웠다는데 연유하여 붙여진 '거악대물'이 나온다. 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광령2리 주민들의 식수로 활용되었는데 거악대물이 부족하면 정연에서 물을 길어 먹었다고 한다. 생수가 흐르는 쪽에 네모나게 물통을 만들고 그 뒤로 빨래하는 곳, 채소 씻는 곳 등으로 구분해 놓았다.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지금도 이곳에는 동네 아낙들이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곳이다.

광령리에는 고인돌인 지석묘가 광령천 서쪽의 평탄한 대지 위에 17기가 분포하고 있다. 인접한 외도동 일대에도 7기가량의 분포하고 있다. 이는 자연에 노출된 바위나 동굴 벽면에 인물, 동물, 식물 등 다양한 문양을 새겨놓은 암각화는 고인돌과 더불어 당시 선주민의 오래전부터 이곳에 정착했다는 사실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비옥한 농지와 온화한 기후 등 입지 조건이 좋아 고려 중엽부터 유목민들이 거주하였다는 설이 전해오고 있는 광령 2리는 거악대물의 용천수를 중심으로 설촌 한 후, 오늘날까지 약 400년 동안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령2리 마을회관 팽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다가 마을을 지나 인적이 드문 농로로 들어선다. 바람 많은 이곳에 바람을 피하기 위해 방풍림이 우거지고, 그곳으로 눈 비비며 날아드는 참새는 먹이를 구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이리저리 분주하다. 참새들 역시 인간 세상 살아가는 방법과 같음을 일깨워준다.

어릴 때는 역사와 나와 상관이 없는 다른 세계로 생각했지만, 이곳에서는 나의 삶 자체가 역사라는 사실을 광령 2리 골목길에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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