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국' 해상무역의 중심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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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 해상무역의 중심지 역할
  • 제주관광신문
  • 승인 2019.04.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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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간 출국 금지령…부정적 정체성 형성

몇 년 전 인도네시아 말루쿠즈 섬에 해외양식개발 타당성을 조사하기 위해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섬은 제주도보다 넓은 2000㎢에 이르고 2000m 높이의 산은 마치 한라산을 보는 것 같았다. 너무나 놀란 것은 토란, 갈대, 풀들은 물론 무태장어 까지 자연적인 환경이 옛날 우리 동네를 타임머신을 타고 왔나하는 놀람이었다. 어쩌면 기원전 탐라와의 교류가 있었던 곳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탐라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3500년부터다. AD 1005년까지 왕성한 해상왕국으로 그 위용을 떨치다가 1005년에 고려에 복속됐다. 탐라국은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백제, 신라와 마른 전복, 말린 사슴고기, 진주 등을 해상 무역을 통해 부를 추적했다.
삼국위지동이지에는 배를 타고 중한을 왔다 갔다 하면서 무역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8~9세기는 당나라의 최대 무역상대국이다. 조선술과 항해술이 발달했고 덕판배는 무역선으로도 이용됐고, 진상품을 실어 날랐다고 해서 진상배라고 도 한다. 왜적이 나타날 때는 왜적과 싸움을 잘 한다고 해서 싸움판배, 당도리배라고 불리기도 한다. 탐라국이 해상무역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해양입지 즉 지리적 경쟁력이 높다. 지리적 요충지로서 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쿠로시오난류는 탐라국을 지나 한반도 남서해안과 동해를 거쳐 일본까지 해류가 흐른다. 쿠로시오 해류의 속도는 0.5노트로 해류의 영향은 선박을 이동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무역풍도 한몫을 한다.
둘째 무역선은 구상나무, 솔비나무, 구실잣밤나무 토종수목을 이용했고 특히 구상나무는 물에 뜨는 비중이 일본의 소나무, 삼나무보다 20%가 높아서 항해능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탐라의 국제적 위상을 기록한 증거는 신라 선덕여왕(643년)때 80m의 황룡사 9층목탑을 건립하며 1층에는 일본, 2층은 중화, 3층에 오월 4층에는 탁라·탐라, 5층 응유, 6층 말갈, 7층 거란 8층 여진, 9층 예맥(백제, 고구려)이라고 적힌 기록이 전해진다. 이렇듯 바다를 통섭의 장으로 여긴 탐라인은 해양개척 의지가 강해 '개방', '도전', '교류' 의 기질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체성은 지금에 와서는 온데간데없고 바다를 외면하고 폐쇄, 배타, 비방 등의 부정적 정체성만 나타나고 있다. 이는 탐라국 이후에 고려의 삼별초의 난과 100년 동안의 몽고 지배, 조선시대의 출륙금지정책, 절해고도의 유배지 등에서 비롯되어 오랫동안 지배를 당해오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방책이 오늘날까지 굳어진 게 아닌가싶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인조7년(1629년) 섬 인구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출국금지령이 내려졌다. 출국 금지령은 순조25년(1825년)까지 200년 동안 이어져 섬은 바다로 둘러 쌓인 감옥과도 같았다. 그리고 절해고도라는 점에서 유배지로서 최고의 조건이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정치에 관여했던 스님들이 유배된 적이 있다. 충혜왕 4년(1343년) 학선 스님, 충목왕 4년(1348년)에 종범스님, 공민왕 5년(1356년)때 석기스님이 있다.
조선에 들어서면 500년 동안에 제주도는 해로가 9백리에 달해 중죄대벌의 유배지로서 바다로 포위된 절해고도라 그 당시 선박 규모와 성능을 봐서 자연스런 죽음을 강요할 정도의 극형이 아닌가 싶다.
광해군은 1937년 유배를 와 1641년 음력 7월1일 67세 나이로 병사했다. 학자중에 김정(중종15년, 1520년), 정온(광해군 6년, 1614년), 송시열(숙종 15년, 1689년)등이 유배를 왔다.
제주사회가 변방이라 유배인들이 교육, 문화, 저술, 산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출륙금지 같은 정책은 백성들에게는 많은 피해를 주었고 의식적인 측면에서 부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게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는 섬이 갖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백성들은 핍박을 받게 되자 부정적이고 피해의식 같은 의식이 고착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제주특별자치도는 사람과 물자와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국제자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비전이라고 볼 때 탐라국의 해상왕국을 재건하는 것과도 같다.
즉 개방, 도전, 교류를 포함하는 탐라인의 해양 개척 정신을 복원한다는 측면에서 신 탐라의 해상왕국을 부흥한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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