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씨 오늘'은, 달력사진을 품고 낭만 씨를 만나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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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씨 오늘'은, 달력사진을 품고 낭만 씨를 만나러 갑시다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9.04.22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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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주생활 & 여행 에피소드

 

꼬마해녀 인형 숨비와 숨비엄마

활짝 웃으면 입꼬리가 길게 시원스럽게 예쁜 여배우라면 줄리아 로버츠가 있다. 그녀보다 더 길게 쭉 올라가 빨간 볼까지 닿는 입꼬리를 가진, 앙증맞고 귀엽지만 못된 표정을 지어도 어울릴 것 같은 꼬마해녀 인형 숨비를 낳은 엄마, 숨비아일랜드 대표 천혜경 씨를 만났다.

'숨비다'는 '숨을 참고 물속으로 들어가다'를 의미하는 제주방언으로, 해녀가 잠수하고 나오면서 내는 숨소리를 '숨비소리'라고 한다. 소호들이 정겹게 모여 있는 이중섭 거리에 자리 잡은 꼬마해녀 인형 숨비 캐릭터 숍에는 4살이 된 구력만큼 다양다종한 상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숨비아일랜드는 지난해 월정리에 캐릭터 숍 2호점을 오픈했고, 벤처기업인증도 받아 캐릭터기업으로 커가고 있다. 숨비를 "제주의 우수한 문화 콘텐츠를 다양하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알리는 '제주 대표 캐릭터'로 키워내겠다"는 숨비 엄마의 비전 또한 당당하다.

특수학교 교사였던 천혜경 씨는 2011년에 7살 난 딸이 일하는 엄마와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다는 말에 1년간 육아휴직을 내고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그녀는 휴가 중에 종종 걷던 올레 길 중에 가장 좋았던 서귀포에 터를 잡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해녀 인형을 만들어 이중섭 거리 디자인예술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한 게 숨비엄마로서 삶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고 직접 디자인한다는 천 대표는 디자인을 공부한 적이 없다. 본래 손재주가 많았는지 물었지만 손사래를 쳤다. 제주는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신비의 아일랜드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이기자' 생각에는 한걸음을 가더라도 같이 가고 느린 숨으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특수학교 교사 경험이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고 실패의 두려움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보였다.

천 대표는 이제 중학생이 된 딸과 등하교 시간에 "모범생이 되어봐야겠어", "이제 겸손해져야 겠어" 등등 자연스럽게 학교생활 이야기를 나누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가족소풍을 다니는 중이라고 한다. 온화한 바다와 도심이면서 시골 같은 느낌이 좋은 올레 5~6코스를 이어서 걷기를 추천하는 그녀는 제주 올레길 동무 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하고, 하도리 해녀합창단을 후원하는 일도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고 한다.

'이기자'도 딸아이의 등굣길에서 아침마다 만나는 섶섬과 주변 바다에 비추는 따뜻한 서귀포의 햇살과 거센 바람에 흩어지며 만들어내는 구름의 풍경을 보며 우리는 '오늘의 달력사진'이라고 부른다. 초승달을 좋아하고 별빛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밤이슬과 바람을 느낄 줄 아는 딸아이를 바라보는 시간은 '이기자'의 가장 따뜻한 힐링타임이다.

'서귀포 씨 오늘은' 달력사진을 품고 낭만 씨를 만나러 갑시다.

"서귀포 씨 오늘은 어딜가나
 서귀포시 구 시외버스터미널 옆 카페 우군
 버스 몇 대 놓쳐도 괜찮아
 유리가 없다면 깨질 걱정을 하지 않듯
 투명한 벽을 만들진 않으니까 서귀포 씨
 칠십 리 펼쳐진 머리칼을 쓸어 올리면
 칠십 리 주유소 그곳에서 이어지는 길
 유동 커피 마시며 오르는 오르막길
 지치면 이중섭거리에 이중섭처럼 주저앉지 … (중략)"

- 현택훈 시 '서귀포 씨 오늘은' 중에서 -

 *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고, 지용신인문학상, 4.3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정민 기자 / newgod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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