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제주의 고인돌…제주가 끝이 아닌 시작점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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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제주의 고인돌…제주가 끝이 아닌 시작점 신호
  • 한기완
  • 승인 2019.04.2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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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제주 태초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이어온 시간 속에 쌓인 선사 유적 고인돌에서 잠들어 있던 제주에 새로운 여명이 밝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섬과 바다라는 지리적 환경을 극복하고 이를 이용한 제주 사람들이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활동했던 이야기 속에서 제주 밝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용담동 고인돌을 만났다.

태초의 제주가 고인돌이 만들어지기까지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쪽으로 한내에는 동산교가 있다. 그곳에서 속칭 먹돌세기 일대가 제주 선사 문화 유적지로 고대마을 유적과 함께 고인돌이 밀집해 있다. 최초의 제주는 섬이 아닌 아시아에서 가장자리에 위치한 대륙이었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번갈아 일어나면서 제주는 평야 지대와 대륙붕의 지대를 반복하다가 약180만 년 전까지 이어져 왔다.
그 후 50만 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계속되면서 5천여 년 전 마지막 화산폭발로 성산 일출봉과 송악산이 만들어져 마침내 오늘날 제주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그 이후로 고산리 유적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주에도 구석기인들이 본격적으로 거주하면서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로 이어지면서 많은 선사시대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용담동 지석묘의 특징

지난 2011년에는 제주시 용담 2동 2624-1번지에서 건축허가에 따른 구제 발굴 과정에서 움집터 29동, 굴립주 건물지 3동, 불다짐 소성유구 3기, 우물(집 수장) 4기, 수혈 유구 58기 등이 확인된 선사시대 유적지가대량으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주변으로 사적 제522호로 지정된 용담 지석묘 군락지대인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돌배라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부터 만들어졌던 사람의 무덤 양식인 지석묘는 고인돌과 돌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인돌은 외부 모양은 시신을 안치하도록 판자 모양의 돌을 사용하여 석실을 만들고 그 위에 큰 돌을 올려 완성했다. 제주특별자치도에는 150여 기의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다. 그중에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선사 유적지와 몇 기의 지석묘를 통해 선사시대 제주의 모습을 짐작할 수가 있고, 앞으로 제주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수가 있을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선사시대의 돌무덤인 고인돌은 우리나라가 고인돌제국이라고 말할 만큼 세계에서 가장 많다. 한반도에서는 전남지역에 가장 많은 2만 여기가 분포하고 있으며 제주지역에서 확인된 지석묘도 대략 150여 기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제주시 외도동과 애월읍 광령리, 그리고 이곳 용담동 주변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들 지석묘는 한반도 본토와는 달리 축조 시기가 늦고 형태도 특이하며 재료도 모두 현무암을 사용하고 있다.

문화교류 또는 이동의 중심지였던 제주

세계 어디나 그렇듯이 그 지역의 땅과 기후가 문화를 만들고, 옛날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신이나 초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지혜로 승화시켜 전래하여 온 것이 신화이다. 삼성혈은 고·양·부 씨의 시조가 솟아난 3개의 구멍을 말한다. 이 구멍에 솟아난 3 시조들은 다섯 곡식의 씨와 송아지·망아지를 가지고 성산 온평리로 온벽랑국의 세 공주와 각각 결혼하여 농경 생활을 시작하였다는 신화가 전해온다. 여기에 온 세 공주의 나라 벽랑국은 아마도 인도인 듯하다. 그들은 인도에서 시작되는 해류를 따라 제주에 왔고 그들의 후예들은 인도까지 교류하면서 제주의 건국신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처럼 제주 신화를 통해 유추하여 알 수 있듯이 지석묘는 한반도에서 제주를 거쳐 일본 큐수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제주가 사면의 바다로서 서해와 대한해협 쪽으로 해류가 갈라지는 지역이다. 이 해류는 제주 남쪽 해협으로 올라와서 중국의 랴오둥반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중국연안을 따라 쿠로시오 쪽으로 흐른다. 해류는 뱃길로 이용했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 멀리는 인도까지도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선사시대부터 근세의 이르기까지 문화교류 또는 이동이 중심지가 제주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제주 사람들은 천 년 훨씬 이전부터 한반도와 중국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동북아 중심지로서의 해상제국의 위치는 대단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 제주는 1500만 명 관광객 시대에서 2000만 명의 시대가 목전에 다다르고 있다. 이는 제주가 아시아의 중심으로 옛 영광이 재현되고 있다는 징조이다.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제주의 미래가 반도의 끝자락이 아닌 시작점임을 알 수 있는 신호가 옛 제주의 고인돌로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기완 기자/hankiwan@hanma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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