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고사리 더꺼진 가시덤불을 촟아사 호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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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고사리 더꺼진 가시덤불을 촟아사 호메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9.04.22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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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주생활 & 여행 에피소드

고사리 마을을 찾아 헤매다

제주에서는 고사리 장마가 오고나면 삼삼오오 동네 사람들과 가족들이 모여 1년 제사용과 반찬용으로, 또는 부업거리로 고사리를 채취하러 간다. 특히 무거운 고사리 가방을 메고 버스에 오르는 할머니들은 피곤함 속에서도 짭짤한 봄철 부업에 매우 분주하다.
고사리꾼들은 실한 고사리를 얻기 위해서 험한 산속을 헤매고 가시덤불도 헤쳐 들어가다 보면 일행과 떨어져 길을 잃거나 갑자기 내리는 고사리 장마에 사고가 나기도 해 늘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최근에는 경찰이 고사리꾼들에게 일행과 떨어졌을 때 위치를 알리라고 호루라기를 나눠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제주 사람들에게 잘 자란 고사리 군락지에 대한 정보는 은밀하게 숨겨둔 곳간 마냥 누구에게나 쉽게 알려주지도 묻지도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이기자'와 같이 이주민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고사리를 꺾으러 가보고 싶지만, 고사리 군락지에 대한 정보도 없고 고사리를 잘 분간하지도 못하는 초보자이니 산 속 깊이 들어가 봐야 만족스러운 수확물을 얻기는커녕 길을 잃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난 홍임정 작가는「무엇이 이 숲속에서 이들을 데려갈까」라는 단편소설에서 자신이 겪은 죽음의 문턱을 나들었던 경험을 '고사리를 채취하러갔다 길을 잃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주인공'을 소재로 작품을 풀어냈다.
그녀 역시 고사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고, 동네 어르신이 "죽은 고사리 더꺼진 가시덤볼을 촞아소 호메"라고 설명해 주어도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기도 했다는데, 이러한 경험들이 소설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달력사진 같은 제주가 아니라, 안거리 밖거리 담장 안을 보고 싶어


2010년에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있는 홍임정 작가는 4년 전에 단편과 중편 소설 6편을 모은 소설집『먼 데서 오는 것들』을 출간했다. 고사리 채취를 소재로 쓴「무엇이 이 숲속에서 이들을 데려갈까」도 이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그녀의 소설에는 '제주살이'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나서 동질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홍임정 작가는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자랐고, 대학에서는 사진과 디자인을 공부했다. 지금은 글을 쓰며 남편과함께 출판사 <파우스트> 대표로서 책을 만들고 있다.

제주의 자연과 사람, 사회문제 등 제주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그녀는 2 년 전 제주 작가회의에서 발 간 한 인터뷰집 『돌아보면 그가 있었네-4·3사람들①』에도 참여했다. 인터뷰집은 그녀를 비롯해 작가 6명이 4·3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을 만나 그들의 증언을 채록하고 작가적 감성으로 재구성해 내었다.
"달력사진 같은 형편없는 작품들에 내 생각과는 다른 이런저런 댓글을 달며 스스로를 괴롭혔다"라고 소설에서 푸념하는 홍 작가이다.
그녀는 "달력사진은 아름답고 멋있게만 보인다. 나는 장엄하게 펼쳐지는 해돋이의 아름다움을 보기보다, 한림항 뒷골목에서 나는 생선 비린내 같은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 집을 알아 볼 때도 공동수영장도 있고 빌트인인 멋진 펜션 보다 사람냄새 나는 안거리 밖거리 돌담길이 있는 동네가 더 좋다"며, 경쟁하느라 바쁘지 않고 여전히 느리고, 환경을 생각하며 독특하게 살 수 있는 자신의 '제주살이' 참맛을 말한다.
<이정민 기자 / newgod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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