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거북이가 누은 현상을 한 월구마을 길을 따라 한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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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거북이가 누은 현상을 한 월구마을 길을 따라 한천까지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10.06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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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묘 하나에도 고대부터 제주가 '해양제국'이었음을 보여준다
'달밤에 거북이가 누워있는 모습이다'라는 의미에서 유래 된 월구마을 풍경.
'달밤에 거북이가 누워있는 모습이다'라는 의미에서 유래 된 월구마을 풍경.

마을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을마다 특성이 있고 그곳에서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제주시 오라3동을 돌았다. 제주시 오라3동 속칭 중댕이굴 주변을 월구마을이라한다. '달밤에 거북이가 누워있는 모습이다'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구전되어오는 마을 설화 중에 스님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거북이는 불교에서 진리인 법을 상징하듯이 스님에 대한 일화가 많이 전해온다. 대부분이 부처님의 법의 세계를 가르치는 듯 마을 이름 역시 거북이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치곤 불교와 인연의 많음을 알 수 있다. 

오라동에는 김석윤 스님, 오성현 스님, 오이화 스님, 김찬수 스님 등 제주의 근·현대의 유명한 고승 대덕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고, 사찰로서는 월정사, 혜조암, 오라선원, 보문사, 천진암, 관음암, 구양사, 연화사 등 8개의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이 지금도 왕성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 역시 산업화와 도시화로 타 지역에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1964년에 정실마을에 정실교회가 들어서면서 오라동에도 기독교 신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마을 탐방의 첫 발자국을 내딛은 곳은 도령마루에서 시작된다. 작년까지는 70년대 중반 당시 대기업이었던 해태제과가 기증하여 길 양옆으로 해태 상을 세웠다가 올해 철거해버렸다.

이유는 도령모루 본래의 이름을 찾기 위해 철거했다고 한다. 세우기는 어렵지만, 철거는 순식간이었다. 이 동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4·3의 끝난 이후부터 이곳에서 허깨비를 봤다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허깨비를 본 사람은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갔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이런 동네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학살 터 바로 옆에 해태 상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철거하기 전 해태상을 세워야만 했던 정확한 사연을 알고 철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했다. 서광로의 옛 이름은 큰 길이라는 뜻의 '구한질(선반질)'로 비탈길이었다. 옛날에는 제주성에서 대정현을 잇는 길로서 사람들의 오가며 쉬어가던 고개였기에 지금의 신제주 7호 광장 주변이 '도령마루'다.

일설에 의하면 이곳은 으슥한 고갯길 옆으로 소나무 숲이 우거져 밤에는 도적과 도깨비가 출몰한다는 동산의 의미로 '도령마루'라고 불렸다고도 전한다. 지금은 부처님오신날이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점등 탑이 도령마루 주변을 밝히듯이 이곳은 예로부터 제주의 동서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이곳에 71년 전에는 4·3사건 비극의 현장이었다.

도령모루 동산에서 제주시내 방향으로 내려오면 관음정사 표지석이 길을 안내한다.

사람 구경은 어렵고 자동차만이 골목골목을 채우고 있다. 인적 없는 마을 뒷길을 걷는 것은 하나의 수행에 가깝다. 눈을 현혹하는 것은 도심 속에 수확을 기다리는 들녘의 푸름이 마음을 가라앉게 하고 옛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절로 묵언이 되면서 바람소리, 새소리에 마음이 편안해 온다.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 사진.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 사진.

마을을 벗어나자 또 다른 마을이 시작된다. 그 어귀에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이 소나무와 느티나무의 그늘을 받으며 수많은 세월을 함께하고 있다. 제주도에는 150여 기의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는데 본토와는 달리 축조 시기가 늦고 형태도 특이하며 재료는 제주 현무암을 사용했다. 특히 이 지석묘는 한반도에서 제주를 걸쳐 일본 규슈지역으로 문화가 교류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지석묘 하나에도 고대부터 제주는 해양제국임을 알 수가 있다.

지석묘 뒤로 제주의 전통 원형 그대로의 초가집이 보인다. 도심 뒤에 자리한 초가집을 보니 마음이 고향을 찾은 듯 반갑고 신기하기만 하다. 예전에는 도민 대다수가 작은 초가집에 대가족이 모여 살아도 아무 불평 없이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물질 풍요 속에 인간들의 정신적인 고독과 외로움은 예전보다도 더하는 것만 같다.

오라선원 입구 사진.
오라선원 입구 사진.

오라선원을 남쪽으로 돌아 나와 연삼로를 건너자 오라동 사평마을이 나온다. 

마을회관 앞 왕벚나무는 며달 전까지 함박눈을 맞은 듯 주변이 하얗게 눈송이가 피었던 가지마다 신록이 울창한 초록의 잎사귀도 벌써 노랗게 변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어느덧 오라 올레가 시작되는 제주에서 가장 큰 하천 고지교가 있는 한 내에 도착하자 오늘 탐방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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