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토가 비옥하고 기후 조건이 온화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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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토가 비옥하고 기후 조건이 온화한 마을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10.2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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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풍경은 걷는 발걸음마다 새로운 광경이 기다리고 있다
전형적인 중산간 농촌 마을인 광령2리 마을 풍경.
전형적인 중산간 농촌 마을인 광령2리 마을 풍경.

광령2리의 옛 이름은 이신굴이다. '유신동'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신굴의 한자어를 차용한 표기라 한다. 조선 성종 때 농토가 비옥하고 기후 조건이 온화할 뿐만 아니라 용천수가 많아 사람 살기에 적당하여 집단 이주자들이 정착한 것으로 전해오지만, 이미 고려 중엽부터 유목민들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광령 2리는 전형적인 중산간 농촌 마을이지만, 주변에 제주관광대학과 공룡랜드 등 교육과 문화가 있는 마을로서 최근에는 제주시와 가까워 전원주택지로서 부상하고 있어 타운 하우스와 관광과 연계된 사업장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광령2리 복지회관에서 서쪽으로 난 골목을 따라 걸으면 시골 골목의 정취를 느낄 수가 있다. 듬성듬성 쌓은 야트막한 돌담 사이로 바람도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든 구조를 보면서 제주의 본래 올레를 만끽할 수 있다.

시골 골목을 걸으며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출발하자마자 금방 의심은 사라지고 마음은 상쾌해 온다. 골목길은 변화가 심하다. 제주 시골의 풍경은 걷는 발걸음마다 금방 변한다. 감귤원이 보이면 잠시잠깐 또다시 새로운 세상이 나오고 속살을 드러내 놓았던 곶자왈 숲에는 초록으로 감추어진 듯 아득하다. 그 길 사이로 이내 마음의 또렷해지고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인연이 모여들어 또 다른 세계를 이룬다. 누구라도 지니고 사는 간절한 마음이 보고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며 옛사람들의 걸었던 그 길 위로 그분들의 심정을 생각하며 발걸음은 멈춘 줄을 모른다.

농로가 끊기면서 흙길로 이어진다. 소나무와 삼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구름도 가는 걸음이 지쳐서 쉬어 갈려고 사바세계로 내려오고 더위에 지친 산새도 이제야 마음이 흥겨운지 멈췄던 노랫가락을 뿜어낸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도채비(도깨비)가 출몰할 정도로 인적이 뜸했던 이곳에 언제부터인지 분위기와 경치가 빼어나 곳곳에 많은 펜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몇몇 사람만이 공유하기에는 안타까움만이 더한다.

소나무 숲을 빠져나오고 가파른 산길을 내려오자 언덕 아래로 한국불교태고종 향림사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으로 향림사 절물도 어렴풋이 보인다.

광령리 물이 솟는 곳에는 절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을 옛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절물지경에는 영천사, 너분지경에는 부문사가 실제로 존재했었다고 한다. 이런 실제 존재했던 연유로 보면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짐작으로 불교문화가 번성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지막한 방풍림 사이로 들어내는 울창한 모습, 그렇게 감귤과수원과 어우러진 들녘에 하늘을 감춘 도량, 향림사에 닿았다.

광령 공동목장 아래에 이어지는 넓은 초지대가 '수덕밭'이라 불리는 곳이다. 향림사가 창건하기 훨씬 이전에 이곳은 큰절이 있었던 곳으로 4·3사태 때 절이 소개되어 그곳에서 수행하던 스님은 부처님을 작벽(자갈을 모아 밭 한쪽 구석에 모아둔 돌무더기)에 묻어두어 홀연히 떠나버렸다고 한다. 그 후 이 근처에서 마용기 스님이 움막을 짓고 불상을 찾아 헤매다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유서 깊은 곳이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일수덕(一修德), 이상좌 목(二上座池), 삼사라리(三砂羅里)라 하여 음택 지(陰宅地)로 유명한 땅으로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로 이곳에 집을 지으면 자손이 번성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영험한 곳이다.

'절물'이라 불리는 작은 샘물 모습.
'절물'이라 불리는 작은 샘물 모습.

향림사 요사채로 돌아 나오면 '절물'이라 불리는 작은 샘물은 강한 생명력을 간직한 물줄기가 바위틈에서 솟는다. 절물입구에서 발견된 큰 주춧돌만이 당시에 영천사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수행자가 있는 곳이면 그 어디에나 있는 샘터. 긴 세월 동안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덕밭 큰 골에 닿은 구도자들은 이 샘물을 마시며 허기와 갈증을 달랬을 것이다. 그리고 한라산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정진을 다짐했을 것이다.

향림사 일주문을 옆으로 돌고 나오니 구름에 숨었던 태양도 함께 걷자는 듯이 얼굴을 내민다. 걸음걸이에 밝은 태양이 길을 인도하고 길가에 하찮은 돌멩이, 풀 잎사귀와 풀벌레도 친구가 되어준다.

동네 사람들에게 휴식과 편안함을 주는 팽나무 모습.
동네 사람들에게 휴식과 편안함을 주는 팽나무 모습.

마을 어귀를 빠져나오자 대로변이 걷는 걸음을 멈추게 한다. 옆에는 오랫동안 광령마을의 수호신처럼 오랜 시간 지켜오고 있는 푸름의 젊음을 간직한 팽나무와 만난다. 팽나무는 이곳 사람들에게 친숙한 나무이다. 해맑은 나한처럼 우뚝 선 나무는 여름철에는 동네 사람들에게 휴식과 편안함을 주는 쉼터를 제공하고 늘 청정한 모습은 수행자의 모습과 똑 닮았다.

수백 년 동안 한 자리를 꼿꼿하게 지키고 서 있는 팽나무가 오늘은 나에게도 시원함과 편안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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