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제주다운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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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제주다운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마을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11.18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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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 행복할 줄 아는 검소하고 소박한 마을
안덕면 평대리 마을 전경사진.
안덕면 평대리 마을 전경사진.

노란 감귤이 익어가는 계절, 가을 향이 짙은 남쪽 마을, 대평리. 오래된 것들의 정겨움과 새로운 풍경이 공존하는 마을. 화려했던 시절을 내려놓고 다가올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라 그런지 안덕면 대평리 가을은 더 아름답고 화려하다.  

제주의 남쪽 마을 대평리는 서귀포시 예래동과 안덕면 감산리 사이에 위치한 해안선은 짧지만,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곳에 들으면 오래된 집들과 골목마다 추억이 살아있고 올레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사람마다 오래전부터 아는 이웃처럼 반가운 인사가 따뜻하다.

제주도 남단에 위치한 대평리는 겨울에는 온화한 해양성기후와 뒤로는 웅장한 군산이 이곳을 외호하듯 병풍처럼 버티고 있어 겨울을 잊고 사는 듯하다. 남쪽 바다와 어우러져 눈에 들어오는 마라도, 가파도, 산방산을 보다 보니 잠시나마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한다. 예로부터 이곳은 마을과 일주도로가 멀리 떨어져 있는 외진 곳에 있어 지금까지 마을의 형태와 농지, 포구, 바닷가 등이 현재 제주도에서 가장 제주다운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동해 용왕 아들의 전설이 깃든 박수기정은 이 마을의 관광 명물이다. 거대한 병풍처럼 둘러친 해안 절벽은 높이가 무려 100m에 달하며 장관을 이룬다.

박수기정의 주변 해안선을 따라 낚시인들이 낚시하고 있는 모습.
박수기정의 주변 해안선을 따라 낚시인들이 낚시하고 있는 모습.

박수기정의 주변 해안선을 따라 낚시인들이 많이 찾아와 주목을 받고 있으며 올레 8코스의 끝이자 9코스의 시작점인 대평리 포구의 빨간 소녀 등대가 올레꾼들의 안녕을 빌어주고, 마을 곳곳에 자리 잡은 조용한 카페들은 지친 여행객에게 위안을 안긴다.

바다를 향해 수직으로 깎아지른 거대한 바위 절벽 박수기정은 제주어로 박수물이 나오는 높은 벼랑이란 뜻이다. 일 년 내내 마르지 않고 바위틈에서 솟아 나오는 물구멍이 '박새기(바가지)'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이 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에서까지 음력 8월 백중에 이 물을 마시면 몸에 부스럼이 없어진다고 해서 물맞이 장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대평리 북쪽은 군산, 서쪽은 월라봉이 성을 두른 듯한 형태로 서 있고, 돌오름 부근에서 발원한 창고천이 서쪽 지역을 분리하고 있어 북쪽으로 진입은 안덕교를 지나야 하고 해안으로는 여러 마을을 거쳐야 한다. 이런 지역적인 특성 때문인지 안덕계곡과 박수기정에 가려진 덕분에 1948년 발발한 4·3 때는 감산리 등 바로 이웃 마을은 피해가 심했는데도 불구하고 피해가 없었다.

올레꾼들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지붕 없는 마을 미술관'으로 변한 모습.
올레꾼들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지붕 없는 마을 미술관'으로 변한 모습.

올레8 코스가 끝나고 9코스가 시작되는 대평리에 올레꾼들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마을 전체가 '지붕 없는 마을미술관'으로 변했다. 아름다운 포구와 박수기정, 쪼슨기정 등으로 올레꾼들이 사랑을 독차지하더니 '올레길 아트'라는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이 마을을 예술마을로 바꿔놓았다. 마을 체험 학습장에서 포구 방파제까지 이르는 구간이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버스정류장 옆 농협창고에 마을 안내도가 만들어지고 담벼락에는 꽃그림이 그려졌다. 방파제 벽에는 인물사진으로 제작된 타일 벽화가 제작되어 마을 전체가 벽화 그림을 담벼락마다 전시하고 있다.

예전에는 대평리도 여느 해안마을만큼 초등학교가 있었을 만큼 큰 마을이었다.

조선 초에는 제주·대정·정의 3 읍에 향교가 설립되어 교육을 했으며 향교 이외에도 서원이나 학당 등이 있어서 교육을 담당했다. 각 마을에는 서당이 있어서 지방자제를 교육했고, 제주에 온 유배인들에 의한 교육도 이루어졌다. 이런 교육에 대한 향학열이 대평리에도 이어지며 창천 2구서당이 1933년에 창설하여 1942년 12월에 폐설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 후 1944년 9월 당시 마을 유지들이 교실을 신축하여 1946년에 대평초등학교가 개교되었다. 재일 교포의 지원받으며 발전하던 학교가 1983년에 이르러 본격적인 산업화로 인해 인구가 대도시로 빠져나가며 대평초등학교가 안덕초등학교 분교장으로 격화되었다가 다시 1996년 3월 안덕초등학교에 완전히 통합되면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대평리 마을회에서 운영하는 안덕 청소년 수련원이 들어섰다.

이곳은 가족 모임이나 단체로 숙박을 해결하기에는 저렴하고 비용과 깨끗한 환경으로 가장 좋은 숙박시설이다. 넓은 방이 6개나 있어 최고 100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제주도 남쪽 태평양처럼 넓은 들판이라는 '난드르'는 대평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섬 전체가 피비린내로 진동할 때에도 4·3의 소용돌이로부터 비껴갈 수 있었던 대평리는 작은 것에 행복할 줄 알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동네처럼 아름답고 검소하고 소박한 마을로 나의 머릿속에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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