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 여행을 할 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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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 여행을 할 만한 곳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11.25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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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들의 묵향을 품고 있는 명월
명월리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반겨주는 마을 입구 팽나무 사진.
명월리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반겨주는 마을 입구 팽나무 사진.

제주시 서쪽 숲을 이룰 만큼 많은 선비를 배출한 한림. 그 큰 학풍 지에 옛 선비들의 묵향을 품고 있는 명월은 마을의 형태가 반달과 비슷하다 해서 '명월'이라고 일설에는 전하고 있지만, 산세가 좋아 학자가 많이 배출될 것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청풍명월의 뜻인 "明月"이라 했다. 아름다운 경관과 그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 찾아 제주시 한림 명월리를 찾았다.

명월리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팽나무가 나와 인사를 한다. 군락을 이루는 명월 팽나무군락지는 제주에는 보기 드물 정도로 한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명월 중동의 마을을 중심으로 흐르는 하천 양측에 수령 500년 이상을 자랑하는 팽나무와 푸조나무 등 노거수 100여 주가 자생하고 있다. 팽나무는 도내의 오래된 마을에 정자 목으로 한두 그루씩 있지만, 명월의 팽나무는 노거수 집단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어 고대 원시 상을 추리하는 자료가 되어 학술 가치가 높아서 기념물로 지정되고 있다고 한다.

유생들이 풍류를 즐겼던 팽나무 그늘에 있는 명월대 모습.
유생들이 풍류를 즐겼던 팽나무 그늘에 있는 명월대 모습.

명월은 예로부터 선비 마을로 알려져 인근의 유생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고 하천의 수목들이 잘 보호되고 있다. 팽나무 그늘에 있는 명월대가 그 당시 상황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명월대는 조선 말기 이 지방 유학자들이 즐기던 곳이다. 명월은 중동에 명월 촌이 오래전부터 설촌 되었고, 진내에는 정사가 있었고 이에 종사하는 지방민과 양반이 많았던 곳이다. 명월대가 있는 천변은 상류에서 하류에 이루기까지 수백 년생 팽나무가 60여 본이 수려하게 자리하고 있다.

옛날 군위 오씨 성을 가진 사내가 이 마을에 장가들었다. 사냥을 즐기는 그는 어느 날 말을 타고 꿩 사냥에 나섰다. 들판과 밀림을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진주 진 씨 한 노인이 아름드리나무를 베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나무를 베어 무엇을 하겠느냐?"고 오 씨가 묻자, 그 노인은 "집 지으려 한다"고 대답했다.

같이 이 동네 살고 싶으니 나무를 좀 나눠 줄 수 없겠느냐고 오 씨가 간청하자 그는 "군위 오 씨라 하니 물 맑은 이 지경은 오 씨가 차지해 살아야 마땅한 땅이다"며 "서로 도우며 이웃해 살자고 벤 나무를 나누어 주겠다"라고 했다. 이런 연유로 군위 오 씨가 이곳에 정착하여 지금까지 13대에 걸쳐 400년에 이루고 있다. 그 나무를 베던 진 씨가 터를 마련한 곳은 하동이고, 군위 오 씨가 새로 설촌한 곳이 중동이다. 이로써 명월리는 지금의 하동, 중동, 상동으로 잇달아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 산세가 좋아 학자뿐만 아니라 인물이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명월리에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아는 국민가수 백난아가 출생한 곳이다. '찔레꽃'으로 유명한 백난아는 1923년 명월리 오남보 씨의 3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오금숙이지만, 가수 데뷔 이후 선배 가수 백년설이 자신의 예명에서 성을 따 백난아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1942년 발표한 '찔레꽃'은 고난에 시달려 마음이 쓰리고 아플 때, 혹은 고향 생각에 시름겨울 때 우리가 나직하게 읊조리는 누구나 즐겨 부르는 민족의 노래로 자리를 잡았다.

명월초등학교 앞에 있는 국민가수 백난아 기념비 사진.
명월초등학교 앞에 있는 국민가수 백난아 기념비 사진.

현재 백난아 기념사업회와 한림읍에는 국민가수 백난아를 기리며 매년 백난아가요 제가 열리고 있다.

백난아 기념비가 있는 앞으로 명월 초등학교가 있다. 이는 1955년 5월 한림초등학교 명월분교장으로 개교하고 난 후 1967년에는 교육열기가 크게 확장되어 학생 수가 급격히 불어나 명월 국민학교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이곳도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 주민들이 대도시로 이주하면서부터 인구수가 줄어들어 1993년 3월 1일을 기해 폐교되어 한림초등학교와 통합되었다.

이후 '초등학교'를 다닌 세대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명월리 청년회에서 폐교된 명월국민학교를 카페(커피반)와 소품 숍(소품반), 전시공간(갤러리반)으로 단장해 '명월국민학교'로 새롭게 단장하여 운영하고 있다.

폐교된 명월국민학교를 카페로 새롭게 단장한 모습.
폐교된 명월국민학교를 카페로 새롭게 단장한 모습.

이곳은 새로운 복고풍의 열풍 속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제주의 이색 카페로 알려지면서 여행객을 비롯한 도민들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청년 작가들의 기발한 창작으로 만들어낸 소품이나 그림, 사진 등을 전시·판매하고,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며 추억의 놀이도 할 수 있고, 편하게 쉬면서 옛 기억을 추억하는 감성공 간을 추구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 여행을 할 만한 충분한 느낌을 주는 명월리에서 색다른 추억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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