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높고 숲으로 어우러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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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높고 숲으로 어우러진 마을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12.16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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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것은 푸른 대로 익은 것은 익은 대로 한가롭게 어울려있다
제일 높고 숲으로 어우러진 마을 월평동에서 바라본 제주시 전경 모습.
제일 높고 숲으로 어우러진 마을 월평동에서 바라본 제주시 전경 모습.

사람 사는 세상은 저마다 나름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나이테의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처럼 자연의 부름 앞에 모든 삶은 흔적을 남기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제주의 이름난 명소도 많지만, 제주의 아기자기한 멋과 아름다움이 있는 마을을 돌아보면서 쏠쏠한 재미를 찾기 위해 제주시 월평동으로 향했다.

제주시 월평동은 중산간 지역에 위치함에도 기후가 온화하고 땅이 기름져 농사가 잘되고 주민들이 부지런하여 예로부터 넉넉하게 살아왔으며, 마을을 흘러가는 하천 경관이 수려하고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 등 자연환경이 매우 아름답다.

한라산이 북동쪽으로 흘러내리는 자락, 한가운데 위치한 월평동의 옛 이름의 '다라콧' 으로 '다라'는 높다는 뜻을 가진 고구려어로 '높은 곳에 있는 숲'이란 뜻이다. 제주시에서 바라보면 제일 높고 숲으로 어우러진 마을이 바로 월평동이다. 그리고 아라동을 비롯해 이 일대 지역은 일설에 의하면 부처님 16 제자 중 한 분인 발타라 존자가 인도에서 이곳 제주에 들어와 한라산을 중심으로 주석하면서 아라동으로 내려왔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혹시 그 이유에서일까? 아라동은 제주도에서는 절과 유사한 무속신앙이 가장 밀집되어 있는 것은 우연 일치라고 말하기에는 신비스러움이 더한다.

아라동에 위치한 산천단은 조선 시대 때 신구 간에 제주로 새로 부임하는 목사가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된 제단이다. 그 이전에는 한라산 백록담에서 제를 지냈다. 가장 추운 한겨울에 백록담까지 제를 지내기 위해 올랐던 사람들은 눈 때문에 사고사가 많았다. 1470년에 새로 부임한 이약동 목사는 이런 사실을 알고 난 후 백록담처럼 영험한 기운이 있는 산천단을 찾아내어 제단을 마련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백록담을 중심으로 제주시 원당봉과 사라봉을 꼭짓점으로 삼각형을 그리면 그 안에 산천단이 있고 위로는 한라산 관음사가 자리하고 있다. 아래로는 제주 시내 사찰 대다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라산이 가까운 골짜기마다 무속 인들이 기도터가 즐비했었다. 그 가운데 영평과 월평동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사찰이 밀집되어있다.

행정구역상 아라동에 속하고 있는 영평동과 월평동은 이 지역의 중앙부를 흐르는 무드내(無等川)를 경계로 동쪽은 영평동이고 서쪽은 월평동이며 북쪽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낮아져 영평 하동에 이른다. 무드내의 상류는 한라산 중간지점으로 침식작용에 의해 깊은 골짜기를 이루며 하천의 풍치가 아름답고 하류는 화북동 별도천과 연결되어 바다로 흐른다.

제주중앙고 앞동산 '신데기모' 과수원 모습.
제주중앙고 앞동산 '신데기모' 과수원 모습.
영평과 월평마을의 본향단인 다라쿳당 안내하는 돌담길.
영평과 월평마을의 본향단인 다라쿳당 안내하는 돌담길.
5평 정도의 당 안에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 모습.
5평 정도의 당 안에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 모습.

월평동 서쪽의 시작은 제주중앙고가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고 그 앞으로 이곳 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처 다라쿳당(제주도 민속문화재 9-5)이 있다. 영평과 월평 마을의 본향당인 다라쿳당은 제주중앙고 앞동산 '신데기모' 과수원 안에 있다. 본향당으로 오르는 길에서 하늘을 덮고 있는 방풍림으로 둘러싸인 숲길을 만나게 된다. 나무는 오랜 세월 세상사에 무심한 듯 하늘을 덮는 나뭇가지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 인공의 숲에서 향긋한 바람과 푹신한 흙, 소나무의 청결함으로 이제까지 봐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했던 무명에서 걸어 나오게 된다. 그렇게 촉촉하고 소담스러운 오솔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녹음에 둘러싸인 다라쿳당에 이른다. 5평 정도의 당 안에는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큰 팽나무가 있고, 그 주위에는 둥그렇게 쌓은 울타리가 있다. 왼쪽 담을 의지하여 나지막한 제단이 있고 나뭇가지에 지전과 물색을 걸어뒀다. 규모는 작으나 신목형 신당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당에 축원하러 왔다가 돌아갈 때는 그릇을 깨는 관습이 있어 당 내부에는 깨어진 그릇이 많다. 이곳을 나와 다시 길을 따라 용강동 방향으로 올라가면 마을이 나온다. 마을 주변으로 많은 복지시설이 밀집되어있다. 한라산 백록담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 제주 시각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법인 제주모자원, 제주시립희망원, 제주장애인요양원, 제주정신요양원, 제주케어하우스, 효사랑요양원 등이 산재하여 한 알의 사랑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월평동은 조선 시대 때 무드내를 따라 마을이 형성됐다 하여 무드내(無等川村) 마을이라 했고, 17세기 말까지는 '알무드내 마을'과 '웃무드내 마을(지금의 용강)'은 구분이 없어 하나의 마을이었다. 높고 낮음도 없고, 더함도 덜 함도 없는 무등의 세계, 오랜 그대로의 마음, 그대로 남아 있는 무등 마을은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옛 지명처럼 그 이름만큼이나 풍경이 정겹다. 푸른 것은 푸른 대로 익은 것은 익은 대로 한가롭게 어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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