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이호동 마을 탐방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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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이호동 마을 탐방길에서
  • 한기완
  • 승인 2019.04.1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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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호동은 제주시 동지역 중에 유일하게 제법 큰 논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논에는 미나리가 자라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벼가 익던 기억이 생생하다. 논 주변으로 난 길을 따라 어머니와 누나들이 물을 길으러 다니고, 아버지가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포구에 테우를 띄우러 다녔던 옛 마을길인 '함께 걸어요! 이야기가 있는 이호동 마을 탐방길'을 다녀왔다.  제주는 신들의 고향이라 할 만큼 신을 많이 모신 신당들이 많다. 제주사람들은 바위나 살아있는 나무 등에 신당을 조성하거나 돌탑을 쌓았다. 신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삶이 척박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제주시 이호동에는 유난히 방사탑이 다른 지역에 비해 밀집해 있다. ‘이야기가 있는 이호동 마을 탐방길’을 따라 이어지는 제주시 이호동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본향당 '남당'에서 그들의 삶을 보다
제주시 이호동 마을 탐방길은 원장천 하류 바닷가 현사마을 입구에서 시작된다. 마을길은 원장천 하류에서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남당으로 향한다. 남당으로 가는 길은 원장천의 뚝 길을 따라 한라산을 향해 이어진다. 한사람이 겨우 지날 갈 정도의 길이지만, 동산 위로 향해 걷다보면 지금까지 남아 있는 한라산의 설경과 현사마을의 아직도 변하지 않은 옛 그대로의 정취가 그대로 눈에 온다. 뚝 길이 끊어지고 나면 자동차 한 대 정도가 겨우 지날 갈 수 있을 만한 마을 뒷길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따뜻한 봄 해살을 쬐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길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 곁으로 나는 다가거서는 “삼춘 여기 어디우꽈?”물었다. 삼촌은 원장천에 물을 길으러 다녔거나, 포구로 향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내 눈에는 ‘남당’ 표시판이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로 만나는 남당은 원장천 동쪽 암반 아래에 있다.
옛날 밤에만 나타나 이곳을 지키는 백발노인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허락 없이는 이 길로 다니지 못하게 했다. 불안한 마음에 마을 사람들은 이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가장 용기 있는 마을 사람이 그 노인을 찾았다. “저의가 어떻게 해 드려야 마을 사람들이 편히 이곳을 다닐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자신을 정성껏 모시라고 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힘을 모아 현사마을 본향당인 ‘남당’을 조성하였고, 햇곡식이나 바다에서 갓 잡아 올 린 가장 좋은 수산물을 먼저 노인께 올리고 난 후 수확의 기쁨을 함께했다. 이후로 마을에는 근심도 사라지고 백발노인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사마을 사람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고 남당은 정신적인 의지 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 안은 이호 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오고 새롭게 신축된 현대식 건물과 어우러진 파랑지붕, 노랑지붕, 검은 돌담이 겨울햇살에 동화 속 풍경처럼 정겨운 동네다.
현사마을을 가로지르는 일주도로 신호등을 바로 건너면‘덕지물’입수에 닿는다. 아직도 변하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언덕 빼기와 작은 논밭이 남아있는 그 바위틈 사이로 솟아나는 용천수가 ‘덕지물’이다. ‘덕지’는 언덕 아래의 못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물은 마을의 식수로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 물을 끌어들여 덕지논을 조성하였다.
덕지물과 이웃하는 땡가물에도 바위틈에서 물이 쏟아나고 있다. 이호는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갈대밭이 있는 마을. 골왓디 방사탑
땡가물을 돌고 나오면 골왓디 마을 방사탑이 있다. 이곳 방사탑은 비드렁물과 고망물의 용천수를 지나면 이호 2동 가물개 일대가 나오는데 예로부터 이곳에는 사귀가 많았다. 잡귀 때문에 마을에 어려운 일들이 많이 발생하여 방사탑을 세웠다고 한다.
 마을의 북쪽 지대는 낮고, 바다가 훤히 들여다보여 액운이 이쪽으로 들어온다고 믿어 돌탑을 쌓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탑을 쌓은 이후로 큰 재앙 없이 평생을 무탈하게 살 수 있었다는 구전이 전해온다. 방사탑에 대한 믿음이 종교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골왓디에는 까마귀(방사탑 위에 세운 석물이나 나무로 만든 모양) 와 방사탑이 마을의 흉재를 없애자는 공동체 의식과 더불어 흉함이나 길함을 공동분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로운 삶을 엿볼 수가 있는 듯하다.
섯가물개를 돌고 나와 오광로 대 도로변을 건너서부터 이호2동인 오도롱이 나온다. 오도롱은 큰가름(대동마을)과 가물개, 골왓, 호병밭, 맷밭 등을 아우르는 이호2동의 총체적인 명칭이다. 오도롱도 많은 현대식 연립주택이 곳곳에 가득하여 옛 모습은 사진 속에서나 찾아봐야 될 것 같다. 말보기소낭을 거쳐 잣벡길도 지났다. 외눈빼기로 해서 이호국민학교터를 거쳐 이호테우해변과 만나는 지점인 ‘대물’에 닿았다. 대물은 ‘대물깍’이라 해서 사리 때 밀려들어 오는 물과 대물에서 흘러든 담수가 만나 물웅덩이를 만든다고 한다.

 

오색천 나부끼는“붉은왕돌할망당”
이호해수욕장을 지나면 붉은왕돌할망당이 나온다. 붉은왕돌할망당은 팽나무와 보리수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오색천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 신비스런 기운이 넘친다.
할망당에 할망은 아들을 출세시키려고, 부모의 건강을 빌기 위해, 부자가 되 달라고...... . 이 모든 일을 수행했었다. 사실은 붉은왕돌할만당은 절에 갈 수 없는 민초들에 간절한 기도처였다.
본당과 방사탑에 의지했던 이호
이호동 마을 탐방 길에는 제주의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공동체가 필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마음을 의지할 대상도 필요했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많은 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신들을 경배하는 가운데 이 동네 사람들은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방사탑을 쌓았고, 본향당도 조성하였던 것으로 보였다.
<한기완 기자 / hankiwan@hanma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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