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다 연결되며 순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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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다 연결되며 순환한다"
  • 한기완 기자
  • 승인 2019.06.07 2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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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이미지 작가 이가경, 아트스페이스. 씨에서 '엉키고 가려진' 展 개최

일상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 판화와 연필 드로잉을 무빙이미지로 재해석하는 미디어 작가 이가경. 그녀의 개인전이 오는 10일부터 23일까지 제주시 이도일동 아트스페이스. 씨(대표 안혜경)에서 ‘엉키고 가려진’ 전시회가 열린다.

이가경 작가는 오클라호마 미술관에서 오는 7일 개최되는 그룹전에 초대되어 전시준비를 하고 있을 정도로 현재 뉴욕에 작업실을 마련하여 여러 중요 미술관 등 전시공간에 초대되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제주에서 여는 ‘엉키고 가려진’의 전시회에서는 작가 자신의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일상의 모습을 움직임과 시간이 한 화면에 중첩되는 목탄 드로잉이나 판화 시리즈로 표현하고 있다.

한 작품에 그 순간과 그 이전 순간의 움직임이 동시에 담기는 독특하고 노동집약적 드로잉과 판화 수 백 장의 ‘순간’들은 몇 초에서 약 3분 정도 사이의 짧은 비디오 영상 설치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가경의 작품 속에 사람들은 매일 걸어서 지나간다. 순간 과거가 된 현재는 판에서 지워진 흔적으로 흐릿하게 남겨지며 곧 지워질 현재는 또렷하게 새겨진다. 매일 반복된 일상의 궤적은 그려지고 지워지면서 공간을 시간으로 켜켜이 채워나간다.

지금껏 지속해온 ‘반복되는 일상의 비역사적 이미지들’은 <엉키고 가려진>전시에서 자연과 사회 문제(issue)에 대한 관심과 표현으로 확장된다. 늘 숨 쉬고 있기에 공기의 존재를 잊듯이, 하루의 대부분을 채우는 일상 역시도 삶의 가치에서 야박하게 대접 받는다. 일상의 축적은 한 개인의 인생 궤적이며 각 개인의 궤적들은 축적되어 인간의 역사를 이룬다.

폴란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인은 "원하건 원치 않건 우리의 유전자에는 정치적인 과거가, 우리의 피부에는 정치적인 색채가, 우리의 눈동자에는 정치적인 양상이 담겨 있다"라고 했듯이 이번 전시(엉키고 가려진)는 작가가 오랜 기간 작품에 담아낸 일상의 기억이 중첩되어 어떻게 발산되고 있는지 드러낸다.

동네 철책 선을 따라 걷고 철책 망에 기대어 언니와 실 놀이 하던 어릴 적 일상의 기억은 경계지역의 정치·군사적 긴장감으로 연결된다. 이 “철책선 시리즈” 작업은 2채널 애니메이션과 판화 시리즈 그리고 실 놀이 그림자 설치작업이다. 숲과 집과 사람들 마음을 숯덩이로 만들며 타들어갔던 캘리포니아 산불... 작가는 지인들 안부를 걱정하며 뉴스에 시선을 고정했다. 끝없이 타오르던 산불과 하와이 수중 화산 폭발의 연기는 각각 100장과 120장의 목탄드로잉으로 그려졌다. 그 목탄 드로잉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불안, 절망, 초조함까지 다 삼켜버리며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작가는 ‘경계선에 반복적으로 엉켜있는 철책선의 꼬여진 긴장, 세계 온난화의 심각화에 따른 잦아진 대형 산불과 심해진 화산 활동과 같은 재해로 인한 연기를 소재로 스모크 무빙 이미지에 비쳐진 불확실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2018년에 시작된 2채널 모니터 애니메이션 작업 ’서핑 시리즈‘ 와 파도 이미지를 소재로 한 목판 작업도 이번 전시에 포함된다.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있는 작가 자신인 엄마와 함께 걷는 소녀인 딸(Walk 2010), 어릴 적 미군부대 철책선 옆에서 무심히 언니와 실뜨기 놀이를 했던 소녀인 작가(철책선 시리즈2019). 관찰자적 시선으로 거대한 공간에 밀려드는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물결(Grand Army Plaza, Brooklyn 2009), 우리들의 안전과 환경재앙을 걱정하게 하는 산불과 하와이 수중화산 폭발(연기 시리즈2019), 끝없이 반복되며 움직이는 파도(서핑 시리즈2018)...모든 것은 다 연결되며 순환한다. 그리고 비정치적인 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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